-금요일 밤에 혼자 술과 라면을 먹다가 친구 M의 연락을 받고 나갔다. 사는 얘기를 하다 보니 한숨이 푹푹 나왔지만 그러다가도 뜬금없이 한숨 쉬는 내가 웃기고 자꾸 말을 끝맺지 못하는 내가 좀 바보 같고 나도 모르게 내 얘기가 길어질 때면 화들짝 놀라 머쓱하게 웃었다. (나는 원래 주로 듣는 입장인데.) 인생이라는 희비극 앞에서 우리는 어깨를 들썩여가며 깔깔거렸고, 다음날 날 기다린 것은 결국 뇌를 후벼 파는 또 다른 내 오랜 친구, 숙취. 안 반갑다, 친구야.
-친구 B의 이야기: 36세,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며 수입이 일정하지 않음. 이 친구도 최근에 2배나 오른 전세 대출 금리 때문에 정신줄을 자주 놓고 있음. 최근에는 나이 먹고 알바 구하러 다닌다며 캭캭 실성한 듯 웃더니 오늘 연락이 왔다. "나 거기 알바하기로 했다. 나 이제 이자 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자고 자신에게 말하듯 서로에게 말한다. 아니다, 서로에게 말하듯 자신에게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친구 K의 이야기: 39세, 12년 전 같은 방송 미디어 계통에서 일하다 친해진 내 영혼의 단짝. 공공기관에서 2년 계약직 기간을 채우고 곧 퇴사를 앞두고 있음. 2년간 휴직 후 그 자리에 복귀하실 분의 환영식과 자신의 환송식을 같은 날 한다며 울분을 토한다. 나는 그냥 핑계 대고 가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운다. "인생에 진도가 안 나가는 것 같아." 나도 운다. 그녀가 말한다. "네가 나 살려줬어.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친구 A의 이야기: 35세, 역시 같은 방송 미디어 계통. 작년 가을, 퇴사 일주일 전에 정리 해고를 통보받았다. 이번달이 실업급여 마지막이라고 한다. 일거리를 찾다가 한 군데 면접을 갔는데, 그곳에서 당장 합격이라며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평가받으며 3개월 동안 일한 뒤 고용할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매주 고용의 단두대에 올라 잘릴지 말지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 골 때린다. 도대체 왜 정상적인 데가 없는 걸까? 그래도 힘내자며 오늘의 커피는 자기가 쏘겠다고 했다. 실업자들의 이렇게 눈물 나는 의리 보셨는가…… 다음엔 꼭 내가 사주고 말겠어…….
-그런데 우리 모두는 왜 자꾸 웃었을까. 얘기하며 웃고 또 웃었다. 울다가도 결국 웃었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차라리 웃어야 했을까. 우리가 그토록 갈구한 건 거짓된 희극이었을까, 진실된 비극이었을까.
D-26
참기 힘든 세 글자의 말들
일요일, 평소에 하던 걸 하기로 한다. 퇴사를 통보받은 지 2주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밤마다 마음을 돌아보며 일기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일상에서 미묘하게 이탈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주말마다 동네 뒷산에 가서 햇볕이 드리우는 흙길을 밟으며 산책을 하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오곤 한다. 숲 속에서는 새소리와 나무냄새가 삶에 대한 모든 질문을 능가할 정도로 생생하여 잠시나마 모든 걸 잊게 해 준다. 오늘은 새들이 푸석한 겨울 낙엽을 밟고 노니는 소리를 엿들었다. 작은 존재들의 사박거림에 귀 기울이며, 아마도 가벼워지고 싶던 건 내 마음이었을 테지. 숲 속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내고 세상에 내려올 때 내 표정은 짐짓 잠잠하다. 언제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그 틈을 타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려고 했다. 최대한 태연자약하게…… 앗, 그러나 한순간 내 마음은 간절해지고 말았고…… 오늘도 산에서 얻은 마음, 산에 다 돌려주고 나왔던가. 혼자 올라온 사람을 혼자 내려가게 하는 오늘도 너무한 산아, 산아. 아무 마음도 탐내지 않기 위해 탐내야 할 것이 고작 괜찮아 라는 말이라면 그래, 얼마든지 해 줄 것이다. 아낌없이 해 줄 것이다. 간절한 기도처럼 해 줄 것이다. 나에게, 그리고 내 친구들에게, 외치고 또 외쳐도 너무도 부족하여 참기 힘든 세 글자의 말들. 괜찮아. 힘내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