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de-Out

퇴사 D-2

by 세라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보내고 싶은 날이었지만, 속이 너무 쓰렸다. 핏기가 가신 채 동네를 걷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페퍼민트 차를 우렸다. 그윽한 향기가 내면에 스민다. 감정이 자물자물 사그라드는 날들. 작은 촛불 하나쯤은 밝혀도 되겠지.


탁.


어둠에 잠겨가는 시간을 억지로 밝히고 싶지는 않다. 나는 화려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비디오를 편집할 때도 그랬다. 그래서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트랜지션을 잘 쓰지 않는다. 트랜지션(Transition)이란 장면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화면을 뒤집거나 밀려나게 하는 등 편집점에 전환 효과를 주는 것을 말한다. 요즘은 고급스러운 트랜지션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너무 많지만, 나는 그래도 그중에 가장 기본적인 'Cross Dissolve'를 최고로 여긴다. 앞 장면과 뒷 장면을 적절히 섞어놓는 디졸브 기법이다. 그저 부드럽게 섞어 놓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때가 있다. 아마도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싶어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트랜지션(Transition):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바꿀 때에 사용하는 기법.
디졸브(Dissolve): 화면의 밀도가 점점 감소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화면의 밀도가 높아져서 이윽고 장면이 전환되는 것을 말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시기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기로 넘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그때 삶에는 일종의 공백이 생긴다. 틈이다. 삶의 틈은 대체로 어둡고 혼란스러워서, 틈을 건너갈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시간을 편집하는 건 나에게 기술적으로 단련된 일이지만, 시간의 균열을 봉합하는 건 어려운 일에 속한다. 그래서 그렇게 다양한 트랜지션이 존재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의 삶을 비디오 트랙 위에 올려놓고 편집할 수는 없기에, 나는 틈 속에 빠질 때마다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방황하기만 했다. 삶이 더 남아있다는 게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끔찍했다. 삶이 정지되기를 바랐다. 당신은 그런 적 없는가. 틈에 빠져 허우적댄 적, 없는가.


삶의 한 시퀀스가 끝났음을 알리는 블랙 스크린이 날 기다리고 있다. 또 틈이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시간 편집의 오랜 장인으로서 나는 Cross Dissolve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세련된 기술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이 시간의 끝자락에 긴 Fade Out을 적용해보려 한다. 빛과 어둠을 섞어 놓는 디졸브 기법의 일종이다. 힘겹게 달려온 시간이 느닷없이 끼익 멈춰버리거나 팟 튀어버리지 않도록, 좁고 깊은 틈으로 대책 없이 추락해버리지 않도록, 천천히 사위어 가는 시간을 바라보며 차를 우리고 글을 쓰고 명상하는 것. 밋밋하지만 부드럽고, 무심하지만 단아하게…… Fade Out.


페이드 아웃(Fade-Out): 영상이 점차 어두워지다가 완전히 검정색으로 사라지는 장면 전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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