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04
동료를 밀고 넘어뜨리고 쏴 죽여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오징어 게임'. 나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현실, 특히 직장 생활의 축소판이자 간소화 버전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잔인하고 더 냉혹했다. 현실은 '연출'이 아니라 '실전'이었으니까. 살다 살다 구조 조정까지 당한 마당에 뭘 더 참을까. 오늘은 내가 겪은 인사 평가 제도, 그중에서도 동료 평가 제도에 대해 토해내 보고자 한다. 이 제도 때문에 모 대기업에서는 유서를 쓰고 자살한 사람도 있었는데, 아직도 많은 기업에서 버젓이 시행되고 있다.
'동료 평가 제도'는 말 그대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제도다. 수직 방향으로만 평가했던 방식을 다원화하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으며, 상급자 하급자 할 것 없이 함께 일하는 모든 동료를 평가하고 평가받게 한다. 결과는 최종 인사 고과 점수에 간접적으로 반영된다.
동료 평가 기간이 되면 개인별로 암호화된 화면 입장 코드를 받는다. '어떤 경우에도 철저하게 익명성을 보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라는 초대장과 함께. 코드를 넣고 로그인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주르르 뜬다. 그러면 한 명 한 명 클릭해서 일을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는지, 협업은 얼마나 적극적으로 하는지, 회사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전문성 계발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지, 서로의 다름을 잘 인정하는 편인지, 그 외 도덕성·친절성·효율성 등에 대해 1점에서 10점 사이의 점수를 매긴다. 객관식 채점이 끝나면 다음으로 서술형 페이지가 나온다. 거기에선 동료의 장점과 단점 등 인간성에 대해 묻는다. 물론 최소 글자수를 충족해야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 최종 제출 버튼을 누르고 나면 수정은 불가능한데, 이건 제출 후에야 알았다.
취합 기간이 지나고 결과 조회 기간이 되면 나에 대한 평가가 집결된 리포트를 조회해 볼 수 있다. 거기에는 내 사교성이나 도덕성 등이 평균 점수로 환산되고 각종 그래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객관식 문항의 결과는 한 마디로 수준 낮은 인기투표의 온상이었다. 누가 봐도 친한 사람이나 잘 보이고 싶은 상사에게 점수가 몰렸다. 애초에 인성을 점수로 매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데 그 안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들 얼마나 객관적이겠는가? 타인의 속을 어떻게 짐작하겠으며, 짐작한다 한들 몇 점을 줄지 역시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였다. 같은 5점도 누군가에겐 '5점이나' 일 수도, 누군가에겐 '5점밖에' 일 수도 있는 것이다.
주관식 결과는 더 끔찍했다. 입력한 말투나 오타까지 누군가가 쓴 그대로 뜨기 때문에 팀원 수가 적을 때는 누가 썼는지 대략적인 유추가 가능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거 누가 쓴 거 같은데' 하는 눈치 게임이 시작되고, '앞에서는 같이 웃고 커피 마시는 동료가 뒤에서는 날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때다 하고 평소 싫어하던 상사에 대한 고발 리포트를 써낸 순진한 하급자들에게는 지옥의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공식적인 분열의 장이 마련되는 셈이다.
사람들이 점수 때문에 상처를 입은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아니 말하지 못하기에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대놓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러나 마음을 닫는 것조차 상급자가 갑이었다. 그들은 의심 가는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업무상 차별을 하거나, 인사를 아예 안 받아주기도 했다. '익명성 보장'이라니, 이 얼마나 눈 가리고 아웅 하기인가. 공공연한 비밀은 온갖 루머와 야합을 만들어 냈고,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에는 "동료와 어색해졌다" "퇴사하고 싶다" "죽고 싶다" 등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누굴 믿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스스로 연출한 가짜 평화 속에서 긴장감을 숨긴 채 매일 함께 일해야 했다. 그 누구도 이게 집단사기극이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게다가 계약직들은 재계약 시기가 되면 자질을 평가한답시고 결과지를 들추어 꼬투리를 잡곤 했으니, 여차하면 동료 평가에 의해 해고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누가 누굴 자른 것인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곧 부서장과 개별 면담이 진행된다. 동료 평가 결과지를 앞에 놓고 협업을 잘 못하는 사람은 왜 협업을 잘 못하는지,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왜 실력이 부족한지, 점수와 그래프 앞에서 순서대로 절절매며 고해하고 해명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해명이라도 된다면 덜 억울할까. 면담에는 '여러 사람이 너를 이렇게 평가했기 때문에 결과는 옳다'라는 불가항의 전제가 깔려있었고, 빈약한 개인이 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변명하지 말고 다 고쳐", 그뿐이었다.
이 완벽한 연극 속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동료를 쏴 죽이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실수는 누군가의 기회. 누군가 삐끗하는 순간 벼랑 끝으로 확실히 밀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죽고 싶지 않은 자, 최선을 다해 죽일 뿐. 알았든 몰랐든 먹고 사는 세계에 로그인한 순간 우리는 모두 인성 따위 빵점이었는지도 모른다.
파이팅.
파이팅은 무슨.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한잔해.
그냥 한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