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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Oct 02. 2023

집은 멀어지고, 길은 사라지고

명절마다 인파가 빠져나간 도시에서 찬바람을 쐬며 훌쩍훌쩍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 커피를 마시다, 혼자 하늘을 올려다보다, 해가 지면 말없이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마치 금지된 구역을 걷는 듯한 아슬함을 안고서……


걸어요, 그냥. 여기에 가야 할 곳을 알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요.


반팔을 입고 거리를 걷자니 어느새 몸에 냉기가 스몄다. 내가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려 온 가을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문득 가을은 계절이라기보다는 무지개처럼 하나의 현상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오후의 특정한 햇빛의 각도 속에, 나무 그림자가 쏟아진 자리에, 기적처럼 생각을 멈추고 멍해지는 순간에, 거기다, 거기에 잠시, 가을이 나타난다.



방황이 길어지고 있다는 걸 아는데, 그렇다고 이 방황을 멈출 수 있는 방법도 모르겠다. 2023년이 허무하게 흘러가고 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런 날에는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에 대해서, 슬픔과 우울의 차이에 대해서, 도저히 해명할 수 없다. 어떤 문장으로도 정의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머물다 가고, 머물다, 간다.


 (그러나 어디에서 어디로?)



추석 연휴, 빈 거리를 배회하다 연남동 바에서 술을 마셨다. 취기를 느낀 순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이후부터의 기억은 뒤죽박죽으로 남아 있다. 찬바람 때문이리라. 기억하는 것은 내려야 할 환승역을 한참 지나쳤다는 것. 겨우 되돌아가 환승했는데 이번에는 안 내려도 되는 역에서 내렸다는 것. 막차가 끝났다는 것도 모르고 의자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는 것. 역무원이 피곤한 표정으로 날 깨웠다는 것. 폰은 꺼졌고, 길은 깜깜했고, 3번이나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는 것. 누군이제 당신 집으로 가는 방법은 없어요, 라고 말했던 것도 같다. 순간 나도 모르게 후두두 눈물을 흘렸던 것다.


미안합니다. 제가 오늘 좀 슬퍼서요,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구겨질 대로 구겨진 나에게도 아직 수치심이란 것이 남아 있어서, 길을 묻고 나서는 꼭 길을 나섰다. 그것이 길 물은 자의 도리였다.


가자. 가야 할 곳이 있다면…… 가야지.


그러나 걸음을 내딛으면 길은 사라졌고, 길을 물었던 기억도 사라졌고, 어디가 어디인지 방향을 감각할 수 없어서 모든 게 귀찮아졌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집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나 멀었던가. 어깨를 옹송그리며 헤매던 그 밤, 이제 반팔은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긴소매를 꺼내 입자고.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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