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라 Oct 11. 2023

내 자리의 채용 공고가 떴다

퇴사일기#15

 문제의 채용 공고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옆자리 동료였다. 익숙한 로고, 익숙한 절차. 그녀는 마치 명탐정처럼 전후 상황을 추리했다. 속닥거리던 내부자들, 절묘한 타이밍, 곳곳에 남아 있는 허술한 흔적! 다름 아니라 채용 공고에 걸린 구인 조건에는 내 일 말고 그녀가 맡고 있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그녀 역시 간접적으로 퇴사를 통보받은 셈이었다. '2인분'을 소화할 더 싸고 더 어린 인력을 찾는 건가? 아니, 3인분? 자기 자리의 채용 공고를 자기가 먼저 발견한 기분이란…… 바짝 메마른 가슴에 소금물을 끼얹는 것 같다. 철썩! 정신 차려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란다. 희미한 영상 속에서 올라가는 입꼬리가 보인다. 죽어가는 나를 깨우고 다시 뺨을 때린다. 죽지 마라. 죽지 말고 살아라. 아직 시간이 남았잖니. 그들이 미친 건지, 내가 미친 건지 모르겠다. 한때 내가 사랑했고 증오했던 모든 것을 게워 냈는데, 아직도 쥐어짤 게 남았나요…… 부탁합니다, 애원합니다, 그냥 이대로 눈을 감게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그만해 주세요, 포기해 주세요, 제발 죽여주세요…….


 실성한 채 중얼거리고 있노라니 탈락한 2번 주자가 감옥에 들어왔다. 불어 터진 눈을 홉뜨고 산발을 한 그녀를 확인했다. 친구가 생겼다. 어서 와, 나의 감옥에 온 것을 환영해.


 그 밤, 우리는 부르튼 입술로 독주를 나눠 마셨다. 너 한 잔, 나 한 잔, 끝없이 건배, 건배, 독주가 이렇게 달았던가, 크크큭, 깔깔깔, 프프프…… 우리의 감옥에는 기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더 이상 쥐어짤 눈물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누군가의 앞에서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꺽꺽, 학학, 푸, 웃는 것처럼 울었다. 우리가 그토록 갈구한 건 거짓된 희극이었을까, 진실된 비극이었을까. 둥근달이 거나하게 빛나는 밤이었다. 달이 쾅 하고 이 도시에 떨어져 죽처럼 무르게 터져버렸으면 좋겠다. 모두가 공평하게 짠맛 한 숟갈씩 맛봐야 한다.

이전 15화 다만 가방을 꾸릴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