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라 Nov 25. 2023

걸으세요, 읽으세요, 낙엽이 되세요

#03

 이번 주에는 온도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다시 한번 가을이 장난처럼 찾아왔다 갔습니다. 이제 패딩을 입는 게 어색하지 않으니 겨울 초입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럼에도 가을 이야기를 조금은 더 하고 싶어요.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들이 있으니까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요, 저는 그 말이 이렇듯 순식간에 스러지는 날씨의 변화 때문인 것 같습니다. 광채와 윤기가 넘치던 자리에서 불과 한 주만에 바싹 말라버린 나뭇잎을 본 적 있나요? 낙엽 더미 위로 찬 바람이 한소끔 불어갈 때 잠시 멈칫했던 순간이, 당신에게도 있었나요? 그렇다면 당신도 읽은 겁니다, 살아 있는 존재들이 스스로 바스라지면서 몸소 일러준 문장들을. 이맘때 숲과 거리에는 무수한 삶의 요약본들이 있습니다. 걷기만 해도, 바라보기만 해도, 독서하지 않아도 '독서되는' 계절 속에 살고 있는 거지요.


 식물이 시들어가는 모습은 사람이 늙어가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식물도 사람처럼 오그라들고 얇아지다가 한순간 마지막 숨을 툭 떨어뜨리며 검은 생을 마감합니다. 어떤 잎은 빨리 떨어지고 어떤 잎은 늦게 떨어집니다. 어떤 나무는 풍성한 열매맺고 어떤 나무는 빈약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차이 없이 앙상해집니다. 그렇게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끝나는 겁니다. 우리가 밤이 길어졌다는 사실을 얼마간 쓸쓸하게 여기고 있을 그때 말예요.


 떨어지는 낙엽 한 장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유는 방금 생을 마감한 존재의 홀연한 갈빛 테두리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아마도 그 광경에 담긴 우주적인 시간 때문이겠지요. 어쩌면 당신은 한 해 동안 보았던 이나 꽃, 향기나 열매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피워내지 못한 꽃, 빚어내 못한 열매, 낮은 곳에서 멈추어 버린 우듬지에 대해…… 가을에 생을 되돌아보는 일은 자연스럽습니다. 틔우고 열리고 뻗어나가던 힘이 내려가고 닫히고 꺾이는 시간이니까요. 그러나 어느 누가 그더러 불행하다 하겠습니까? 단지 저는 존재의 마지막 몸짓 앞에서, 하르르 소멸하는 작은 몸 앞에서, 


며칠 전의 그 꽃빛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을까?

생의 마지막저리 우아할 수 있을까?

언젠가 나의 낙일에, 누군가에게 한순간이라도 각인될 있을까? 


하는, 후회인지 예감인지 모를 생각들을 했던 겁니다. 무엇으로?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이 편지로 말이지요.


 다가올 날들은 춥겠습니다. 친애하는 그대여, 겨울이 온다고 슬퍼 말아요. 겨울이 오면 우리는 눈꽃송이처럼 시리고 아름다운 비유를 쓸 수 있잖아요. 앙상한 가지 사이로 보이지 않던 길이 열리겠습니다. 겨울이 가능하게 하는 일이 있을 겁니다. 당신이 읽은 문장들이 궁금한 11월 마지막 주에, 그리운 마음을 담아 글을 씁니다.

.

.

.


이전 02화 좋아한다, 좋아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