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금이 고난 주간이라면, 그래서 추위와 배고픔 중 하나를 꼭 겪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까?
나는 배고픔보다는 추위에 더 관대한 편이었나 보다. 어디 가서 지지 않는 약골이지만, 이런저런 기괴한 단칸방에 구르며 살아왔던 잔뼈 덕에 나름의 요령을 많이 습득했기도하다. 그간 잡다한 전열 기구를 차곡차곡 사 모으기도 했거니와, 그걸로도 부족하면 외투 걸치고 양말 신고 있으면 되지 않나. 나는 치약이 얼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실내온도 15도의 요즘에도 보일러 틀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누추한 집들에서 겨울마다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광인처럼 언 뺨을 때리곤 하던 기억 때문이다. 이런 나를 친구는 좀 답답해했다.
하지만 진짜 답답한 건 나였다. 친구는 배고픔에게 아주 박하다. 나와 반대로, 배고픔은 봐줘도 추위는 못 봐준다 주의다. 배고픈 건 그냥 참으면 참아지는 것이기에 굶거나 대충 때우면 된다는 것이다. 대신 하루에 적어도 두 시간은 보일러를 돌리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서 기분을 끌어올린단다. 친구 역시 전세 이자의 노예이자 구직 중인 백수 처지인데, 가끔 가다 폭발해서 배달 음식이라도 시켜 먹으면 자학을 아주 심하게 한다. 평소에는 겨우 계란 하나만 가지고 몇 날 며칠을 먹으면서 말이다. 친구여, 제발 그러지 말어라. 추위에는 요령이 있다지만 배고픔에 요령이 어디 있나?
산책을 다녀오던 길, 친구에게 뭘 나눠 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문득 주머니에 넣어 놓은 핫팩에서 옥돌 같은 온기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가진 게 좀 많은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렇게까지 춥지 않았다. 나에게는 털장갑은 없지만 선물 받은 핫팩이 쌓여 있고, 전기방석도 두 개나 가지고 있다. 비록 고장 났지만 친구처럼 드라이기가 아닌 전기난로로 발을 녹일 수 있으며, 또한 전기장판이 있어서 적어도 등 뜨숩게 잘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까지 배고프지도 않았다. 인복과 식복이 있는 것인지, 백수로 지내면서 선배 후배 망라하고 밥과 술을 얻어먹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회사에서 싸게 살 수 있다며 쌀 10kg를 두 번이나 보내준 이도 있고, 자취생 불쌍하다며 가끔 제철 과일을 보내주는 낭만적인 이도 있고, 보고 싶다고 불러서는 김장 김치를 싸주는 다정한 이도 있고, 집으로 초대해서 술주정도 받아주고 해장국도 끓여주는 이도 있고, 잊을만하면 불러내서 젓가락 쉬지 말라고 잔소리를 잘하는 구수한 이도 있고, 저 멀리 지방에서 정성으로 만든 반찬을 통 큰 박스 꽉 채워 보내주신 친구 어머니도 있고, 아프지 말라며 비타민을 보내준 이도 있고, 또…… 더 쓰자니 나는 너무 뻔뻔스러운 사람인 것 같다. (이렇게 은근슬쩍 자랑도 잘한다.) 어쨌든 너무 너무 많다!
그러니까 나는, 가진 게 좀 많은 게 아니라, 아주 많은 것 같다. 친구에게 갖다 주려고 쌀과 견과류와 몇몇 저장 식품을 챙기다가 핫팩, 전기방석까지 넣고 보니 내 곳간은 반씩 나누어도 충분하고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심으로 너무 많은 것이다.
혹독하기만 한 삶이 어디 있을까. 번아웃의 바닥을 기며 나태하게 살고 있기는 하지만, 퇴사 후에 새로이 만족하는 일상도 있다. 우선 내가 원하는 대로 단출하게 밥을 차려 먹을 수 있는 것이 참 좋다. 그릇 많이 꺼내지 않아 좋고, 반찬이야 별로 없어도 콩나물국 한 그릇 끓이면 그만하니 좋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에서 불편한 사람과 억지로 대화하지 않고 홀로 묵언하며 단순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하기까지 하다. 점심시간이나 회식 자리에서 버려지는 예쁜 음식들을 볼 때마다 배알이 뒤틀렸는데, 그 꼴 안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매일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마지막 회사는 세미 정장을 요구하는 회사였고,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하기만 했던 블라우스며 구두며를 사들였었다. 거적때기를 입고 촬영하러 가도 되는 환경에서 살아왔던 나로서는, 처음에는 이런 소비가 무척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광고판에 나오는 영업 사원처럼 멀끔하면서도 튀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눈길을 사로잡으면서도 어디서 샀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센스를 갖춘 코디를, 그것도 매일매일 고르는 것은 꽤나 고역이어서, 나는 차라리 유니폼이 있었으면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동료들과 백화점을 산책하며 옷이니 화장품이니 하는 브랜드 매장들을 구경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소유욕이 차오르던 것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지금은 그저 잠옷과 산책옷 사이를 성큼성큼 오갈 뿐이니, 쓸데없는 고민에 돈과 시간과 마음을 낭비하지 않음은 물론이며 그만큼의 여유가 덤으로 생긴 거라 요것은 1+1이다.
나는 언제나 햇빛과 바람을 그리워했다. 대도시에서 기계의 부속품처럼 산다지만 적어도 한 인간으로서, 계절의 변화 속에서 살고 싶었다. 보고라도 싶었다. 그러나 창문 없는 지하실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꽃은커녕 청신한 바람 한 줄기 맞는 일도 요원했다. 동료들과 점심 산책을 할 때면 미세 먼지 최악인 날에도우리는 상쾌하다고 말했다. 적어도 흐르는 공기였으니까. 퇴사 후에 이자에 허덕이느라 여행은 한 번도 못 갔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햇빛과 바람과 들꽃과 노을을 많이 누렸으니, 이것이야말로 여행이었다. 동네 곳곳에 내 마음의 바다가 흘렀고, 시집 한 권 들고 숲에 들어가면 나무 의자가 다 내 것이었으니, 이것이 기실 여행 아니면 무엇이랴.
좋아하는 책이야 공공재라 도서관에 가면 실컷 빌려볼 수 있고, 가끔 중고 서점에서 보물 같은 책을 건지면 그야말로 극락이다. 내 방에는 비록 싸구려지만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도 있고, 일할 때 욕심깨나 부려서 책상도 혼자 쓰기에는 아주 큰 걸로다가 사놨다. 넉넉한것이 들판이따로 없다.
(나는 천상 절에 들어갔으면 딱 맞았을 거라는 말도 자주 듣지만, 술을 좋아하니까 그건 좀 곤란하다. 나는 야간형 인간으로 수면이 불량하고 낮에는 나무늘보 마냥 늘어져 있기를 잘하니, 아침 예불은 불참이 확실하다. 비록 처참한 실패뿐이라지만 가끔 가다가 별 잡놈들과 연애도 하니까 스님으로서는 더더욱 탈락!이다.)
나의 유일한 바람은 언젠가 더 간소하고 단정한 곳에 살면서, 내 글에 더 섬세한 자연을 스미게 하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며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는 자연 속에 '깃들어' 살지 않는 이상, 글 속에 자연을 들이는 것에는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 나는 시인들을 통해 배웠다. 비록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과 고층 빌딩을 멀리 하며 쉬었지만, 그리고 나는 자타공인 '서울에서 시골처럼 살기천재'라지만, 사실 서울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소망이다. 이것은 내가 나에게 내린 차차숙제가 되겠다.
연말 연초에는 옷을 좀 더 버려야겠다. 뭐든 서두르지 말아야겠다. 책조차 욕심내지 말아야겠다. 그래도 친구가 절망하는 건 싫으니, 친구의 마음은 좀 욕심난다. 친구를 만나면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쳐줄 것이다. 해피뉴이어도 외쳐줄 것이다. 쓸데없는 농담도 떠들 것이다. 오늘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