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6
피곤해 보이는 한 여자가
우산을 쓰고 눈밭을 걸어가고 있다
여자의 머릿속에는 우산과 장갑과
장갑과 우산,
장갑을 가지고 나왔어야 했는데
우산만 가지고 나왔다니
중얼중얼……
잠시 내리다 금세 사라지는
오늘의 진눈깨비
진눈깨비만 온종일 내리네
상담사가 물었었지
여기서 무엇을 얻어가고 싶으세요?
그때 여자는 뭐라고 했다더라
일단 저기까지는 걸어가야 해서요
장갑은 없지만
우산이 있으니까
여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겠지
이 길의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닌가
장갑 없이도 우산을 들고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이 길의 끝까지
아닌가
추워요
추워죽겠어요
이건가
아니다
뭐라도 중얼거려 볼 테니까 좀 들어주실래요
이건가
모르겠다 진짜
중얼중얼……
자살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우울한 사람일까
몇 달 뒤에 자신이 살아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여자,
또 일자리를 잃으면
또 자취방을 잃으면
또 뭘로 밥 벌어먹을 테야?
또 어디 가서 짐 풀어놓을 테야?
이래도 안 우울할 테야?
우울이 여자에게 말을 건다
여자는 우울에게 말을 건 적이 없는데
여자는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데
또 월세를 내야 한다
또 이자가 빠져나갔다
월세와 이자가
이자와 월세가
서로 말을 걸고 또 말을 걸고
그만해라 진짜
그만하면 안 될까 이제 좀 그만
그만 좀 이제
정말 이제
좀 그만하면 안 될까
다음은 삶에 대한 의지와 관련된 질문입니다
최근에 자살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다
약간 있다
많이 있다
남들은 자살에 대한 생각이 절망이라지만
그 여자에겐 희망이라지
자살에게 대답하는 힘으로
장갑 없이도 우산을 쓰고 걸어가잖아
우산만 쓰고
장갑도 없이
전혀
약간
많이
중얼중얼……
피곤해 보이는 여자,
몇 년 만에 만난 가족에게 물어보았다지
나 이제 많이 늙었지?
아니 그보다 그냥 피곤한 사람 같아
누나, 너무 피곤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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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12.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