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는 마음보다 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

by 별하열음

이른 아침부터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에 생긴 무인 카페에 들렀다. 암환자가 되고 나서는 커피를 끊었고 카페에 가면 마땅히 마실 수 있는 것들이 없어서 카페 가는 재미를 잃었지만 계속 지나다니면서 염탐만 하다가 이 날은 무인 카페로 들어섰다. 카페 인테리어도 괜찮았고 내가 좋아하는 1인이 앉기 충분한 테이블과 의자도 있었다. 이곳에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손님들 하라고 배치되어 있던 색연필과 색칠공부 종이 때문이었다. 집에도 컬러링북이 있고 색연필도 많지만 이렇게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호기심이 일면서 하고 싶어진다. 이 날은 덥기도 하고 마실만한 것이 없으면 카페인 프리 허브티라도 마실 요량으로 들어섰다. 망고 주스가 보이길래 주문을 하고 주스를 컵에 담아 자리에 두고 색칠 공부 종이 2장과 색연필이 꽂혀 있던 통 2개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색연필은 우리가 어릴 때 쓰던 12색 돌돌이 색연필이었고 색칠 공부 종이는 카페 브랜드 이미지를 만든 것이었다. 내가 시작한 종이는 남자가 머그컵에 얼굴을 박고 있는 그림이었는데 갈색 색연필을 들어 머리카락을 먼저 칠했다. 그리고 머그컵은 노란색으로 머그컵에 새겨진 글씨는 보라색으로 칠하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색칠 공부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그때는 색칠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저 마루 바닥에 엎드려 누워 색연필로 칠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그저 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던 때였다. 언제부턴가 어른이 된 우리들은 그저 하는 것에 대한 의미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소한 것조차 시작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컬러링이 유행이던 때에 컬러링 북을 사서 색칠을 했었는데 그런 나를 보고 나의 주변인들은 “나는 색칠을 잘 못해서 못하겠어” “어떤 색을 칠해야 할지 모르겠어. 망치면 어떻게 해” “나는 예쁘게 못 칠해” 등의 말을 했다. 그때 나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재미있어서 하는 건데 그냥 하면 되지 꼭 잘해야 하나? 올해 초 항암이 끝나고 기운을 조금 차렸을 때쯤 나에게 무엇인가 재미와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투병하면서 집에 있는 동안에 틈이 날 때마다 물건들을 조금씩 정리했는데 ‘나는 나에게 120색 색연필을 사 줄 수 있는 어른이야’하며 샀던 색연필과 사놓고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컬러링북을 꺼냈다. 쓰지 않고 누리지 않으면 이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야무지게 쓰고 물건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컬러링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고요하게 앉아 색칠하는 것이 항암으로 기운이 없는 내게 힐링할 수 있는 소소한 일이었다. 컬러링북을 한 장씩 채울 때마다 작은 성취감도 좋았다.


​그 성취감이 기분이 좋아서 그 마음을 공유하고 싶은 생각에 SNS에 색칠한 컬러링북과 120색 색연필을 사진으로 올렸다. 그중에 어떤 사람이 댓글로 “그라데이션은 어디 갔어 120색 색연필 가지고 있으면서”라고 남겼다. 순간 그라데이션? 나는 그라데이션 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말이다. 사실 그라데이션은 고등학교 때 디자인부에서 잠깐 해봤지 제대로 할 줄은 몰랐다. 그러면서 순간 컬러링은 예쁘게 잘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컬러링 하나에도 참 사람들의 생각은 제 각각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예쁘게 색칠하고 그라데이션까지 넣어서 전문가스러운 경지까지 가는 것도 좋다. 그만큼 나의 능력치가 향상된 것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잘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닌 그저 하는 즐거움들에 오래 머물고 싶다. 그렇게 하는 즐거움들이 반복되어 자연스레 나의 능력치가 조금씩 좋아지는 그것이 좋다.


지금 현재 다니고 있는 수영도 나는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다. 나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수영하는 경험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가는 것이지 수영을 잘하려고 가는 게 아니다. 자유 수영을 혼자 하고 있으면 종종 수영법을 가르쳐 주겠다거나 나에게 수영을 잘한다며 다가오시는 분들이 있다. 나의 수영 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관찰하고 말을 걸어오시는 분들도 있다. 나는 수영을 잘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주 6일을 거의 매일 수영을 가서 물속에서 놀다 오다 보니 자연히 10년 전 배웠던 수영법이 돌아왔고 더 잘할 생각은 없다. 뭐든 잘하려는 마음은 마음의 부담을 주고 평온한 즐김을 주지 못한다. 아마 사람들은 자유형, 평영, 배영을 할 줄 아니 다음은 접영으로 실력이 늘겠지 하고 기대를 하겠지만 잘하려고 애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수영을 한다.


일기 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일기는 나에게 나의 속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공간이며 성찰과 사색을 하는 일이다. 잘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닌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난 것을 쓴다. 주변에 일기 쓰기를 권했던 적도 있고 일기 쓰기 모임을 운영해 보려고 한 적도 있는데 사람들은 일기 쓰기에도 글을 잘 쓰지 못한다거나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시도조차 하기를 꺼려했다. 일기는 특히 그 누구에게도 내보이는 글이 아닌데도 마음속에 잘 써야 한다는 마음이 자리 잡혀서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어릴 적 학교 방학 숙제로 그림일기를 검사받지만 않았어도 일기 쓰기를 숙제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 마음 안에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얼마나 사소한 부분에까지 영향을 주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완벽하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완벽주의자로 완벽병에 걸려 있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강박으로 이끌고 삶을 유연하지 못하게 했다. 잘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못할 것 같은 것은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하거나 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썼는지 모른다. 그러다 책을 읽고 최적주의자에 대해 알게 되었고 완벽함을 버리고 최적주의자로 살기로 다짐을 했다. 최적주의자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실패해도 괜찮다. 완벽주의자는 이거여야 해 이거 아니면 안 돼라고 하는 고정적 마인드를 지녔다면 최적주의자는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네 다른 길을 찾아봐야지 하는 유연한 사고를 지닌 사람을 뜻한다. 완벽주의자들이 완벽함의 추구를 쉽게 버릴 수 없듯이 최적주의자로 살기 위한 연습은 오래도록 지속이 되어야 내 것이 된다. 아직도 내 마음의 한편에는 완벽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좌절도 하고 스트레스도 받는다.

이제는 못해도 괜찮다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고 나를 다독이며 연습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경험들을 내게 주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완벽함을 추구했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부터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사회에 나오면서 그랬던 것 같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자신도 모르게 ‘완벽병’에 걸렸지만 여전히 모르고 있고 의식하지 못한다.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것이 베이스에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남의 시선을 굉장히 많이 신경 쓴다. 내가 좋은 것보다 남들이 봤을 때의 내가 좋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잘하는 것도 스스로가 만족하는 부분인가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하는 것이 타인의 인정을 바라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옳지 않다. 무엇이든 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저 하는 것에 의미와 즐거움을 찾았으면 좋겠다. 결과보다는 삶 속의 과정들에 몰입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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