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족을 만족으로 바꾸는 것은
치열함인가 느슨한 마음인가.
독기가 자라기도 전에
독기의 싹을 뭉개어 땅에 묻고 토닥이는 이가
독기를 품겠다 한들
얼마나 치열해질 수 있을까.
느슨함이 독을 품고 시간에 숨은 육체와 정신을 베어버려도 시간은 늘어나지 않는다.
독을 품는다는 것이
절실함 없이도 가능할까.
의문이 의문으로만 끝나는 건
여전히 독을 가져보지 못해서다.
왜 그리 독기를 품고 싶은지.
누군가 묻는다.
독기가 성취를 앞당기는 자극제라고.
그 답이 내게도 답인지 모른 채. 답한다.
독을 갖기 위한 또 다른 수단의 독이 필요하다.
그림 Andrew Wye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