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오후를 갉아먹는 공허한 시간을 판다.
너는 내 시간을 사서 운동을 하고
너는 내 시간을 사서 쇼핑을 하고
나는 네게 준 시간 동안 고이 죽은 듯 있으리.
내려가다 멈춘 눈꺼풀이 그대로 정지하고 말하려고 벌렸던 입술을 채 다물지도 못한 채 시간이 멈추리.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 마법 풀리듯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면 그뿐.
사라진 내 시간은 처음부터 무의미하게 사라지고 말 시간.
시간을 판다.
목청껏 외치지만 내 시간 따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초침마저 일하는 정지되지 않은 시간 속에 그대로 삼켜진다.
네게 주지도 않았는데 내 시간은 왜 이리 잠잠한 것인가.
시간이 나를 잠식해 저 아래로 끌어내려 깊은 울에 빠지려는 걸 누군가 건져낸다.
방금 전 시간을 팔려했던 내가.
건져내는데 시간을 할애한다.
그렇게 오후가 지나간다.
내가 나를 움직여 정신과 육체가 원활히 돌아가게 하는 일, 그것이 내 시간을 온전히 쓰는 것인가.
묻고 답하고 다시 묻는 일.
하늘은 맑고 바람은 간간히 불고 구름은 유유자적 지나가는 그런 날이었다.
누군가는 좋은 날이라고 하는 그런 날이었다.
그림 Tatsuro Kiu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