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_사소함에 뭉클
21살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친구들은 대학 생활을 즐겼지만, 나는 돈 버는 재미에 빠졌다. 게다가 일머리가 좋아 동료들이 어려워하는 일도 쉽게 해냈다. 덕분에 ‘일 잘한다’라는 소문이 났고, 남들이 꺼리는 프로젝트까지 도맡게 되었다. 일이 마무리되지 않을 때는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일하는 즐거움이 더 컸다. 일이 능숙해질 때쯤 마음 한구석 담아두었던 공부에 대한 미련이 밀려왔다. 그래서 야간 대학과 사설 학원 다니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배우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밀려드는 업무 탓에 배움의 길을 계속 이어가기 어려웠다. 일은 하면 할수록 더 쌓였고, 나도 모르게 남들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고 싶다는 욕심이 커졌다. 내 방식이 옳다고 고집하다 보니 직원들과 자꾸 부딪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프로젝트 성과를 냈지만, 승진은 늘 뒤처졌다. 한 직장에서 젊은 시절을 지나 중년이 되어서야 내 삶의 전부라 믿었던 일이 정말 행복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회사 일에 흥미도 점점 사라졌다. 내 인생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며 마음이 흔들렸다.
삶에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때, 우연히 나를 흔드는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을 구해준 건 독서였다고 고백하는 책을 읽는 순간, 그것이 나의 인생 책이 되었다. 직장에 매몰되어 책과는 멀어졌던 내가 변하기 위하려면 독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이야기 모임에 나가며 독서와 수강을 병행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좋은 인연들을 만났다.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차곡차곡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쓸모를 세상에 어떻게 펼칠까?’ 이 두가지 물음은 내 삶의 주요한 화두가 되었다. 단순한 돈벌이를 넘어, 존재의 본질을 건드리는 질문이었다. 지금까지는 사회적 인정이 가장 중요했고, 그것이 존재 이유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야 깨달았다. 진정한 삶의 길잡이는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지금과 다르게 살려면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좋아하는 공부에 몰두할수록 혼란과 불안은 점점 사라졌다.
일찍부터 내 인생에 무엇을 채울지 고민하는 과정은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했고, 동시에 타인에게도 더욱 관대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었다. 지금 나는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작은 공동체를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 공간은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장소다.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좋아하는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며, 때로는 글을 낭송하기도 한다. 서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며, 서로의 삶을 깊이 이해하는 과정도 경험하고 싶다. 또한, 나를 돌보는 공부로 이어왔던 사주명리학을 통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싶다. 과거의 나는 직장 생활을 하며 뒤처진 승진을 조직에 대한 원망으로 품곤 했다. 그러나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며, 운명의 바코드를 이해하는 순간, 이제는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가 원하는 기준이 곧 내 욕망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이 행복의 기준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신을 책망하며 스스로를 옭아매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 역시 끊임없이 공부하며 성장하고, 배움을 실천하는 현역으로서 삶을 채워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