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_사소함에 뭉클
겨울 내내 따뜻한 실내에서 지내며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때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시간을 흘려보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걸 느끼면서도 움직이기가 싫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더 이상 가만히 있다가는 이 무거운 기운에 짓눌릴 것만 같았다. 결국 운동화를 신고 문을 나섰다.
운동이 필요했다. 아니, 어쩌면 운동보다는 바깥 공기가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찬 기운이 세상을 감싸기 전에 차로 30분 거리의 공원으로 갔다. 낮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많았던 공원. 하지만 해가 지자 공원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낮 동안 가득했던 웃음소리는 사라지고, 대신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만 들려왔다. 가로등 불빛 아래 길게 드리운 내 그림자가 발밑을 따라다녔다. 바닷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가웠지만 불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가로등을 의지하며 선명하게 보이는 계단을 올랐다.
부두와 가까운 이 공원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작업자들의 소리로 조용한 적막을 깨우고 있었다. 드문드문 운동하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 속에서 잔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들이 희미한 불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이내 어둠이 짙어지며 더 많은 배의 모습이 보였다. 배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없었다면 바다가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잔잔한 바다 위,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 끝자락에서 평화롭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배. 하지만 그 위에서 일하는 어부들은 어떤 기분일까. 지금쯤 저 배 위에서는 누군가 차가운 바닷물을 뒤집어쓰면서도 그물을 걷어 올리고 있겠지. 손바닥이 거칠어질 만큼 밧줄을 당기고, 파도에 몸이 흔들려도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그렇게 잡아 올린 생선을 보고서야 비로소 오늘 하루를 버틴 보람을 느낄 것이다. 한 마리라도 더 잡아야 하는 절박한 마음, 파도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의 피로감, 그리고 가족들에게 돌아갈 때의 묵직한 안도감. 멀리서 바라보는 배의 불빛은 낭만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불빛 아래에는 땀과 노동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어부의 손길로 한 마리, 두 마리 건져 올릴 때마다 밥상이 풍성해지길. 세 마리, 네 마리 건져 올릴 때마다 자식들의 교육비로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길. 다섯 마리, 여섯 마리 건져 올릴 때마다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지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로등을 의지하며 걷는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단순히 뱃살을 빼기 위해서일까? 아니, 어쩌면 이 걷기 역시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어부들이 매일 바다에 나가듯, 나 역시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 이 길을 걷는다. 한 걸음, 두 걸음. 걷다 보니 마음속 잡념들이 하나씩 정리되었다. 그저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나온 길이었는데, 어느새 생각을 정리하고, 하루를 돌아보고,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되고 있었다. 어부들이 바다 위에서 생계를 건지듯, 나도 이 길 위에서 내 삶의 무언가를 건져 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둠이 짙어지고, 바람은 더욱 차가워졌다. 하지만 배는 여전히 바다 위에 떠 있었다. 파도가 몰아쳐도, 바람이 불어도, 삶은 계속된다. 나도 그렇게 묵묵히 걸어간다. 어부들이 저 배에서 간절히 고기를 건져 올리듯, 나도 이 길 위에서 나만의 무언가를 건져 올리고 싶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