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사소함에 뭉클
나에게 가계부는 못다 그린 그림이다.
멋진 풍경을 보면 내 안에 담고 싶은 마음이 인다. 하얀 스케치북 위에 그 풍경을 나만의 색으로 표현해 보려 하지만, 어설픈 그림 솜씨로는 자연의 멋을 담기 어렵다. 몇 번의 붓질 끝에 결국 스케치북을 덮고 만다. 내 가계부도 그와 닮았다.
경제적 자유인이 되려면 돈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는 건 안다. 새는 돈을 막고, 절약도 해야지. 그렇게 새해마다 결심하며 가계부를 펼치지만, 3개월도 채 못가 접어버리기 일쑤다.
고정비는 잘 쓴다. 제세공과금, 적금, 보험, 자녀 용돈까지. 하지만 변동비를 적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자신감이 꺾인다. 오늘은 마트, 내일은 외식, 모레는 경조사. 하루하루가 출혈처럼 적고 나면 절약하겠다는 다짐도 흐려진다.
절약하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소비를 하면 무력감이 몰려온다. 그 틈에서 나는 매번 결심과 후회의 밀당을 반복한다. 결국 지금은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 이것도 하나의 변명 같지만, 어쩌면 나를 보호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가계부는 씀씀이를 정리하는 대신 감정을 정리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가계부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