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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Dec 23. 2023

흔적은 남아있다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다.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광고의 홍수 속에서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늘 이렇게 망설임을 낳는다. 하지만 받아 보기로 했다. 누구인가는 나와의 연락이 꼭 필요할 수도 있을 테니까.


- 혹시 000 동아리 회장이신가요?

그 말을 다시 생각했다. 000라니?


나이 50이 다 되어오는 시간에 방송대를 입학했다. 여고를 졸업한 지 30년. 여고졸업 30주년 행사로 입학한 건 아니지만 한 세대가 지나가는 30년 만에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가 대학을 입학한 해이기도 하다. 당당하게 나 공부 시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이웃에게는 말도 하지 않았다. 힘들다는 방송대 공부를 끝까지 해낼 자신도 없었지만 늦은 나이에 경제적 이득이나 장래를 위한 투자도 아닌  공부를 시작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당당한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적은 등록금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게  나를 정당화시켰다. 더 늦기 전에 시도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용기도 조금 보태면서.


그렇게 시작한 방송대 공부는 너무 어려웠다. 가족의 격려 속에서 한 학기를 겨우 겨우 턱걸이로 통과하고 나니 공부의 방법도 터득하게 되고 강의를 통해 알게 되는 것도 많았고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용기가 생기고 공부는 재미있어졌다. 왜 이제야 공부를 시작했는가, 하는 후회도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시작했다는 대견함까지 가지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시대상황이 많이 달랐던 예전에는 삶이 바쁜 가정주부가 공부한다고 나서는 게 쉽지도 않았다.


수업 말고도 학교의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했다. 나이 어린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대충 공부하는 척하면서 학점이나 어찌어찌 따보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학기 중에는 학과 공부에 열중하고 방학이면 교과목에 등장했던 문학서적들을 찾아 읽으며 지방대학 사회교육원의 강의도 별도로 받았다. 늦은 나이에 기초도 없이 쓰는 글쓰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역 방송대의 글쓰기 동아리 활동도 병행했다.  직장인이 많은 방송대의 특성상 중도 포기자가 무척 많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언니인 나에게 동아리 회장의 임무가 맡겨졌다. 1년에 한 번 아주 작은 문집을 발행하는 임무였다. 30년 가까이 사회생활이 아닌 전업주부의 삶을 살았기에 낯선 사회활동이 쉽지 않았고 제대로 하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재미있었다.


모르는 전화 속에서 000 회장이냐는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인 이유는, 내가 1년 동안 동아리 대표였던 적이 있지만 그게 언제 적 이야긴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벌써 15년 전 아닌가. 한동안 열정을 가지고 움직였지만 학교를 졸업했고 그 후  암투병을 하느라 아마추어 글쓰기 시간을 놓아 버렸다. 그렇게 몇 년을 건강을 찾으려 애쓰며 보냈다. 글쓰기는 이미 담 넘어간 후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사회와 단절되어  4년의 시간을 할머니로 살고 있다. 직장 다는는 딸을 위해 손녀의 육아에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어여쁜 손녀의 세상 속에서 매일을 보내다 보니 책마저도 잡지 못해 독서도 못하며 살고 있다. 아득하게 들리는 동아리 대표. 그래 그랬던 시간이 있었다.


서울에 사신다는 그분은 문집을 읽었고 함께 활동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내가 한때 동아리 대표였던 적이 있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고, 지방 사람들로 구성되었던  그 동아리가  지금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보니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았는지가 몹시 궁금하다. 문집 어디엔가 내 번호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보다도 오래전 어설픈 글들을 모았던 문집을 보고 전화를 준다는 게 또 신기했다. 그건, 작지만 인쇄된 문집이었으니 돌고 돌면서도 남아 있는 나의 흔적이다.


나는 잊었지만 내 흔적이 어디엔가는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한 때는 열정을 가지고 운영하던 블로그라던가, 스토리들이나 어느 사이트의 게시판에 내 흔적이 꽤나 남아 있을 것 같다. 그 순간 본명을 감춘 아이디 아래로 솔직한 내 감정을 적었던 짧은 글과 누군가의 글에 달았던 댓글들. 그 글들은 지금 어디에서 주인 없이 방황하고 있을까?  휴지가 되어 이제는 찾을 수 없는 가상공간 속에서 떠돌고 있을 내 기억들.  불러 모을 수 없는 문장들이다. 그걸 찾아 읽을 수 있다면 지나간 시간 속의 내 솔직한 감정들을 알 수 있을 텐데. 추억이 더 새록새록 떠오를 수 있지 않을까?


모르는 번호 속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보니,  순간의 기록들이 모두 조심스럽다.   내 이름과 가볍게 흘려버린 문장들을 시간이 지나가며 나는 잊고 있는데 지워지지않고  누군가에게 읽힐 수도 있는 것이다. 익명이든 실명이든 내가 적었던 기록들은 그 순간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지우지못한 그 마음들이 모여 지금 여기 내가 있다.




사진:태백 만항재 (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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