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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Nov 01. 2020

용감한 형제

강연으로 처음 돈을 벌었어요.


두려웠다. 사람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 그래서 말 대신 글을 쓰는 것이 편했다. 말을 하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보고서 같은 글쓰기로 먹고 산다. 쓰고 지우고 버리고를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으니까. 말은 뱉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고 녹음하지 않으면 다시 듣기 어렵다.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호소력 있게 말하는 강연을 들으면 '나도 저 사람처럼 말을 잘하고 싶어 진다.'     

   



무더위에 지친 8월 어느 날 영어학원 대표님에게 연락을 받았다. 아이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어쩜 이렇게 말을 잘하는지 궁금해했다. 학원 수강생들에게 가족 독서법 대해서 시니차니에게 온라인 강연을 부탁했다. 뜻밖의 제안에 허허허 웃음이 났다. 아이들도 화들짝 놀랐다. 초등학생이 무슨 강연이냐고 고개를 저었다. 아내가 좋은 경험이니까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아빠도 도와주기로 하고 수락했다.   


강연용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족나비를 하면서 찍은 사진을 찾았고 재미있게 읽은 책도 몇 권 준비했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도 다시 편집했다. PPT는 시니가 만들었고 차니도 생각을 보탰다. 각자 이야기할 역할도 나눴다.     

 

자료 초안을 아빠에게 보여주며 리허설을 했다. 생각했던 방향으로 말이 안 될 때는 내용을 수정하고 다시 연습을 했다. 엄마 아빠만 있는 집에서 촬영할 때는 부담이 덜했지만 처음 보는 20명 앞에서 말하는 것은 압박감이 크다. 재미없다고 하면 어쩌지? 말하다가 실수하면 어쩌지? 강연 날짜가 다가오니 아이들의 걱정이 커졌다. 처음 하는 강연에 긴장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형만 하면 안 되냐며 빠지고 싶다는 차니. 부담스러우면 강연 자체를 안 해도 되지만 약속이니 지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수해도 괜찮아. 차니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아빠의 응원에 차니가 힘을 냈다.     


강연 날 아침, 오전 10시가 가까워지니 긴장된다며 서로 안고 호들갑을 떨었다. 연습을 두 번 더 하고 줌 회의방에 입장을 앞두고 있었다. 아빠도 방에 있어 달라고 했다. “큰 실수를 하면 아빠가 수습해줄게. 파이팅!” 


아빠는 목소리가 잘 들리는지, PPT가 보이는지 확인했다. 강연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포항에 살고 있는 시니차니입니다." 유튜브를 처음 하던 날처럼 긴장을 했지만 곧 목소리에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간 유튜브에서 말 연습이 도움이 되었다. 20분의 강연은 무사히 끝났다. 중학생 형의 질문에 대답도 잘했다. 인사를 마치고 아빠에게 다가와 큰 숨을 내쉬며 안겼다. 아이들의 얼굴에 먹구름은 햇살로 바뀌었고 첫 강연의 긴장감은 보람으로 바뀌었다.


"아들, 수고했어. 첫 강연 축하해^^"     




이틀 후 차니가 자전거를 타고 은행에 갔다. 통장에 입금된 강연료를 확인했다. “아빠, 만원이 입금되었어요. 제가 진짜 돈을 벌었어요. 신기하네요. ㅎㅎㅎ” 강연을 한 것도 감사한데 강연료에 아이스크림 케이크까지 선물 받았다. 다음에는 더 잘할 하겠다며 또 하고 싶은 눈치를 보인다. 2020년 8월 22일은 가족나비 강연으로 처음 돈을 번 날이고, 용감한 형제로 다시 태어난 날이다. 



강연으로 처음 돈 번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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