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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Nov 01. 2020

집 밖으로

가족 둘레길 걷기 프로젝트 No.1


코로나의 급습으로 보이지 않는 두려움의 벽이 생겼다. 학교는 멈췄고 아이들은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집은 학교가 되었고 학부모는 선생님이 되었다. 아빠의 육아휴직도 진짜 육아가 되었다. 청소, 식사 준비, 설거지, 마스크 사려고 약국 앞에서 한 시간 넘게 줄 서기를 했다. 직장에서는 재택근무로 전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동료들은 출근하는 날보다 집에서 일하는 날이 더 많았다. 육아휴직을 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2년간 고민하고 휴직을 했는데 코로나가 모든 것을 망쳤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그래도 환경만 탓할 수 있겠나. 나에게 주어진 1년은 가족에게 가장 유익한 경험이 되어야 하는 마지막 선물의 시간이다. 불평과 핑계로 1년 후 복직을 표현하고 싶지도 않았다. 

     

네 식구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유럽으로 가족 자동차 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쉬움은 유럽여행 책을 읽으며 나비에서 공유를 했다. 책에서 본 곳은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같이 보았다. 유럽여행을 가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꼭 걷고 싶었다. 가족이 함께 걸으며 서로를 돕고 더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산티아고를 대신해 우리나라의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더 이상 집에만 있을 수 없어 '가족 둘레길 걷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둘레길걷기

     



6월 21일, 첫 둘레길 걷기는 해돋이 명소로 알려진 구룡포 호미반도 4코스였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먼저 챙기고 마실 물과 과일도 준비했다. 개학하고 100일이 지나 야외로 나오니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다. 일출의 명소 해맞이 광장에 도착하니 탁 트인 바다가 펼쳐졌다. 소금기 가득한 바다내음이 머리를 맑게 했다. 철썩이는 물소리와 아이들 웃음소리에 코로나 걱정은 사라졌다. 수평선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육중한 화물선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상생의 손 다섯 손가락 위로 줄지어 앉아있는 갈매기 무리가 인간에게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해파랑길은 해안가 '이육사 청포도 시비'를 지나 대보마을로 이어진다. 대보항에 정박한 어선들의 행렬을 지나면 90년대는 붐볐을 마을 길이 보인다. 횟집, 신발가게, 우체국, 보건소 간판은 고향 금당실과 닮았다. 어느 상점 지붕 아래 까만 새가 날아들었다가 사라졌다. “아빠 저 새가 제비예요?” 흙으로 만든 제비집으로 날아드는 어미는 벌레를 물고 있었다. 어미가 올 때마다 고개를 들고 입을 벌려 소리치는 네 마리 새끼들이 엄마를 졸졸 따르는 시니차니를 닮았다. 처음 보는 제비집이 마냥 신기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빠도 중학교 이후로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갔다.      


흑구 문학관을 지나 마을을 벗어나니 들과 밭에는 초록의 곡식들이 자라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걷기가 시작된다. 한산한 도로에 간간이 자동차가 지나며 아이들을 바라본다. 멋쩍게 손을 흔들며, ‘우리도 둘레길이 처음이랍니다.’ 작은 포구에 도착했다. 고기잡이 배에서 내려놓은 갈색의 그물이 포구 옆 도로 위에 펼쳐져있었다. 물고기 비늘이 묻어서인지 강한 비린내가 코를 파고들었다. 아이들은 미간이 찡그리며 코를 잡고 지났다. 방파제 위에서 바다낚시를 즐기는 강태공 아저씨들이 보였다. 아이들의 눈에는 모든 게 새로웠다.           


호기심을 따라 걷다 보니 5km를 지났다. 돌아가는 길은 해안을 따라 이어진 오르막 내리막 길이었다. 어깨에 맨 가방도 무겁고 종아리도 뻐근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물을 마시며 숨을 고랐다. 얼마나 남았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격려했다. 힘들어도 걸어야 하기에 웃으면서 가자고 응원했다. 도착하면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유혹을 했다. 다시 마을길로 접어들어 제비집을 지나 새천년 광장에 도착했다. 10km를 걸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겨를도 없이 피곤한 아이들은 집으로 오는 길에 곤히 잠이 들었다.           




<시니 생각>

3시간을 걸었더니 아킬레스건이 조여와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차니 생각>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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