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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n 10. 2019

6월 9일, 일상

커피, 음악

출장 때문에 최대 2주일 정도 아내와 떨어져 본 적은 있지만 두 달이 넘게 아내와 떨어지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도대체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공허감이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다. 아침 저녁으로 카톡 영상통화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도움이 많이 되지만. 이럴 땐 정말 기술문명에 고마움을 철철 느낀다.


외로운 타지 생활에서 내가 기댈 것은 커피와 음악 정도인 듯하다. 커피는, 다른 포스팅에 썼듯이 아주 극단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 정말 구정물이라고 밖에는 말하지 못할 것을 돈을 받고 팔다니. 알바생이 다르면 다를 거야, 같은 브랜드라도 지점에 따라 다르겠지, 새로 지은 빌딩에 입점한 것은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연이어 그 커피를 먹고 연이어 배탈이 났을 뿐이다.


캠퍼스 외곽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커피샵이 두 곳 있지만, 일단 매점에서 파는 스벅 병커피를 마셨는데, 으~ 캔커피 맛이 뭐 그렇지. 달기만 하고. 요즘엔 믹스 커피도 이것보다 맛있는 게 많은데, 매점에 파는 스벅 병커피 여남은 종류를 전부다 샅샅이 쳐다봤지만 설탕이 안 든 건 하나도 없었다.


현재까지 마셔본 것 중에 제대로 된 커피는 PT's Coffee 하나뿐. 그런데 기숙사에서 걸어서 3km 정도 가야한다. 가는 길에 공사장이 있어 보행자용 우회로를 위태롭게 걸어가야 해서 더 멀게 느껴진다. 그나마 여름에는 오후 두 시까지만 영업한다. 커피가 맛있으니 자신이 있는 거겠지. 맛 없는 McLain's는 하루 죙일 영업한다. 산책 중에 그 근처를 지나칠 때 문이 닫혀 있는 꼴을 못 봤다. 모든 일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오늘 오후는 계속해서 July의 피아노 곡을 듣고 있다. 오전에는 모차르트도 듣고 이루마도 듣고 Fleetwood Mac도 듣다가 오후에는 July 고정이다. 역시 July는 딱 내 스타일이다. 이걸 뉴에이지라 부를지 그냥 피아노 곡이라 부를지는 몰라도 말이다. 장르가 뭔 상관인가. 장르는 평론가들이 필요해서 만든 표딱지일 뿐이다.


July의 곡 중에서는 Somewhere를 처음 접했다.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나오는 곡이었는데, 들을 수록 좋아져서 결국 네이버 검색을 통해 알아냈다. 꽉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멍하니 있다가, 그 음악이 나오자마자 네이버 음악 검색을 켜고 손을 쭉 뻗어 스피커 쪽으로 들이댔다. 그리고는 결국! July의 Somewhere.


July 곡은 뭐 다 좋다. 아마도 대표곡인 듯한 My Soul, 제목과는 달리 내게는 샘솟는 물이 느껴지는 '봄의 태양', 다소 평범하지만 여전히 좋은 In Love, 기타줄에 피크 미끄러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기억하니?', 비 느낌이라기 보다는 차도남 차도녀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Raining. 전부 다 좋다.


어느 뇌과학 책에서 읽은 것인데 (아마도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였을 것이다) 인간이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인간의 감각기관은 그 순간의 단 하나의 음을 들을 뿐이다. 멜로디라는 것은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가 없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의 뇌가 머릿속에서 음을 연결지어 멜로디를 만든다는 가설이 있다. 나는 왠지 이 가설이 맞는 것 같다. 음악을 듣다 보면, 처음 듣는 음악인데도 내가 예상하는 그 음이 앞 음에 딸려나오는 경우가 있지 않나. 우리의 뇌가 어울리는 주파수들을 연결지어 상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협화음이 귀에 거슬리는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시간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것이다. 또는, 시간도 음악도 거기에 있지만, 인간의 뇌가 퍼즐조각을 이어붙여야 우리 인간이 이해하는 형태로 조립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결국 마찬가지 이야기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kKrVHac4u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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