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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26. 2020

우리는 식기의 맛을 보지 못한
역사상 첫 세대다

[독서 메모] 사소한 것들의 과학 / 마크 미오도닉

대단히 흥미로운, 이런저런 재료 이야기.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물건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점이 좋다. 물건을 이루는 재료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생명의 정의에 관한 논의를 거치며 저자는 결국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본질을 결정한다고 결론 내린다. 이미 보철기구와 스텐트, 페이스메이커를 몸 안에 넣고 다니는 인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더욱 인조인간이 될 것이다. 그게 뭐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이하, 발췌/요약.


*****


스테인레스 스틸은 산화크롬막 코팅이다. 크롬이 철보다 먼저 산소와 반응하여 부식을 막는다.


산화크롬은 별 맛이 안 난다. 우리는 식기의 맛을 보지 못한 역사상 첫 세대다.


코코아 버터는 체온에 녹는다. 고체로 저장할 수 있지만 먹는 순간 액체가 된다. 게다가 천연 항산화물질을 가지고 있어 악취를 방지하고 여러 해 저장해도 상하지 않는다.


모든 빛이 똑같이 산란한다면 하늘은 하얗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짧은 파장 빛이 더 산란한다. 그래서 하늘은 파랗다. 그러나 이러한 레일리 산란은 아주 미약해서, 볼 수 있게 되려면 공기가 아주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기로 가득 찬 방은 파랗게 보이지 않고, 하늘 정도 돼야 파랗게 보인다.


이산화규소는 액체 상태에서 식을 때 쉽게 다시 결정을 이루지 못한다. 그 결과 분자는 결정구조를 이루기 위해 딱 맞는 위치로 이동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액체의 분자구조를 가진 채 고체 재료가 된다. 바로 유리다.


유리를 통과할 때, 가시광선은 전자를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다. 별 수 없이 빛은 원자 사이로 통과해 버린다. 유리가 투명한 이유다. 그러나 자외선은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유리 안의 전자를 점프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리는 자외선에 대해 불투명하다. 나무나 돌처럼 불투명한 재료는 저준위 전자가 많아 빛이든 자외선이든 흡수한다.


다이아몬드보다 흑연의 구조가 더 안정적이다. 다이아몬드는 서서히 흑연 상태로 붕괴 중이다.


흑연의 각 층에서 탄소 사이의 결합은 다이아몬드보다도 세다.


흑연 속 각각의 원자들은 남은 전자가 없어 층 사이에서 강한 결합을 만들지 못한다. 층들은 반데르발스 힘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 분자의 전기장 요동이 만들어내는 약한 힘이다. 연필이 써지는 이유는 이 힘이 압력에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핀은 세상에서 가장 얇고 가장 강하며 가장 단단한 물질이다. 어떤 물질보다 열과 전기를 잘 전도하며, 저항이 적다. 물질 속 전자가 마치 거기 없었던 것처럼 벽을 통과하는 양자 효과인 클라인 터널링 현상도 허용한다. 이 모든 특성은 그래핀이 실리콘 칩을 대체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생물의 재료는 무생물의 재료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생물의 재료에서는 다른 스케일끼리 추가적인 연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가장 극적으로 다른 점이다. 무생물 물질의 경우, 인체 스케일에서 압력을 가하면 각기 다른 규모에 영향을 미친 결과로 모양이 바뀌거나 부서지거나 공명하거나 굳어버리거나 한다. 그러나 생물의 물질은 그런 압력이 일어나는 것을 감지하고 대응 행동을 취한다. 과학에서 가장 큰 질문 중 하나는, 능동적인 반응이 수반된 서로 다른 스케일 사이에서 신호 전달이 이뤄진다는 사실이, 과연 뭔가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지 여부다.


(그러나 이후의 논의에서 저자는 생물/무생물 차이가 비물질적 세계, 즉 마음, 감정, 감각에 있다고 말한다. 비물질적 재료로 만든 것들이 우리 몸의 일부를 치환하는 일은 앞으로 일상적이 될 것이라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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