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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23. 2021

빵 오 쇼콜라

나는 '빵 오 쇼콜라'를 아주 좋아한다. 스위스에 살 적에 처음 접했고, 프랑스쪽 국경을 넘어 뮐루즈에 갈 때 종종 사먹곤 했다. 나중엔 그냥 동네 주유소 편의점에서 파는 것도 맛있게 사먹었다. 2프랑이었다. 그 정도 빵이라면 한국에서는 5천 원도 더 받겠지.


스위스는 공용어가 네 개다. 내가 살았던 베른 칸톤은 독어 지역이다. 독어가 가장 폭넓게 쓰이지만 공용어가 많은 나라들이 으레 그렇듯, 이렇게 저렇게 혼용되어 쓰이는 단어들이 꽤 있다. 예컨대 "메르씨 필 말" 같은 표현이 그렇다. 메르씨는 프랑스어고, 필 말은 독어다. 그러니까 땡큐는 불어로, 베리 머치는 독어로 말하는 것인데, 베른을 포함한 스위스의 많은 지역에서 흔히 쓰는 문구다. 마찬가지로, 기다란 초콜렛 바가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패스츄리를 내가 처음 먹었을 때, 빵 이름을 묻는 내게 점원은 그렇게 말했다.


"빵 오 쇼콜라."

스위스식 복합어는 아니고, 그냥 불어다. 독어 지역에서 빵 이름을 그냥 불어로 말한 것뿐이다. 어쨌든, 그 빵은 '빵 오 쇼콜라'라는 이름으로 내게 와서 꽃(?)이 되었다. 단 것을 무지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빵 오 쇼콜라는 기본이고 스위스에 넘쳐나는 달콤한 디저트를 마음껏 즐겼다. 특히 '검은 숲 케이크'을 정말 좋아했다. 불어로는 '포레 느와'지만 점원은 독어로 말했다. '슈바르츠발더퇴르테.'


그러나 '검은 숲 케이크'는 스위스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먹어본 적도 많지 않지만 가끔 만난 경우에도 맛이 형편 없었다. 스위스 사람들이 알았다면 달려오지 않았을까.


반면, '빵 오 쇼콜라'는 지구 어디에 가도 대개 찾을 수 있었다. 카페에서든 빵집에서든, 빵 이름을 말로 해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그만이다. 그런데 어느 날, 토론토의 어느 카페 점원은 내 손가락이 정확히 어디를 향하는지 잘 몰랐나보다. 나는 늘 하던대로 빵 이름을 말했고, 그녀는 되물었다.


"초콜릿 크롸상?"


아, 그렇군. 초콜릿이 들어있는 크롸상이군. 초콜릿 크롸상이 빵 오 쇼콜라와 1대1 대응이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초콜릿 크롸상은 크롸상 모양이고, 빵 오 쇼콜라는 크롸상 모양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직사각형 모양이다. 게다가 초콜릿 바가 하나 박혀 있는 경우도 있고 두 개가 나란히 박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뭐 어떤가. <논리철학논고>를 썼던 젊은 날의 비트겐슈타인은 반박하고 싶겠지만, 언어는 진리를 확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그 이후로 나는 대개 '초콜릿 크롸상'이라는 단어를 쓴다. 크롸상이란 단어는 불어임에도 이미 흔히 쓰이는 단어가 되었으니까, 소통에 조금 더 도움이 된다. 내 눈 앞에 보이는 빵이 정확히 어떤 빵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빵을 사이에 두고 소통하는 두 사람이 더 중요하다.



p.s.


조금 중요한 사족을 달고자 한다. 대학 시절, 불어 시간이었다. 프랑스인 교수가 칠판에 'pain'이라고 썼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뺑!"


교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발음을 고쳐줬다.


"빵."


다시 읽어보라고 했지만, 학생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뺑!"


교수는 계속해서 틀렸다고 지적했고, 네 번째가 되어서야 학생들은 마지못해 풀 죽은 목소리로 "빵"이라고 발음했다. 믿거나 말거나, 나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모두 불어불문학과 학생들이었다.


어휴, 죄송해요, 마쏭 교수님. 어렸을 적부터 들어온 '빵'이라는 단어가 불어라고 생각하기에 너무 후지게 들려서 그랬나봐요. 이것도 속물근성이라면 속물근성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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