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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

[단편] 아이를 찾습니까 (1)

by 히말

우울증이라고 했다. '우울하다'라고 할 때 '우울'에다가, 병 이름에 많이 붙이는 증이라는 글자를 붙인 거다. 우울한 게 병이 될 정도면 사람이 죽기도 하나 보다.


엄마는 강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발견된 것은 사흘 후였다. 경찰이 학교로 찾아왔다. 2교시 수업 중이었다. 미세 먼지도 별로 없고 날씨도 좋은 4월이었다. 파란 하늘을 보면서 학교 운동장을 여자 경찰관과 함께 걸었다.


"엄마, 찾았어."


그렇게 말하면서 여자 경찰관은 나에게 경찰차에 타라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살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엄마가 사흘씩이나 나에게 아무 연락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세상에 엄마랑 나랑 단 둘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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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흘 전, 영어 학원이 끝나고 일곱 시가 넘어 집에 도착해 보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식탁 위에 만 원짜리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오늘이 야간 순번이었나 하고 나는 잠깐 헷갈렸다. 몇 번 다시 셈을 해보았지만, 아니었다. 그날 엄마 스케줄은 분명히 오프였다.


자주 하지도 못하는 아들과의 오붓한 저녁식사 대신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이라니.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할 것은 없었다. 나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지폐를 들고 PC방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햄버거를 후다닥 먹었다.


그렇게 그날 저녁을 회상하는 동안, 우리는 경찰서에 도착했다. 나는 여자 경찰관과 함께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사무실을 지나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왠지 오싹한 느낌이 드는 작은방이었다. 티슈 하나만 놓인 간단한 테이블에, 의자가 양쪽으로 하나씩 놓여 있었다. 남는 의자 두 개가 벽 쪽으로 기대어 있었다.


"신원은 확인됐어. 그러니까, 엄마가 맞아." 여자 경찰관이 말했다.


"네?" 나는 물었다. 그러니까, 누가 엄마란 말이냐고.


"엄마, 돌아가셨어. 강에서 발견되셨어."


"네?" 아,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시신이라고.


"시신을 찾기는 했는데, 신원이 확인됐으니까, 네가 안 봐도 된다는 얘기야."


"네?" 아, 그 얘기가 그 얘기인 거야?


엄마가 사망한 채로 강에서 발견되었고, 신원이 확인됐다면, 나는 도대체 왜 불렀단 말인가. 아, 뭔가 문서에 이름이라도 써야 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익사한 사체는 보기가 좀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아마 감수성 예민한 초등학생 마음 다치지 않게 하려는 여자 경찰관의 배려였나 보다.


문서 몇 장에 이름을 적고, 마시던 유산균 음료를 들고 경찰서를 나왔다. 커피가 먹고 싶었지만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바빠서 경찰차로 집에 데려다주지는 못한다고 했다. 미안하다면서, 여자 경찰관은 택시 타고 집에 가라는 말과 함께 만 원짜리 지폐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이렇게 파란 하늘에, 학교 수업도 빼먹는 행운을 거머쥔 초등학생 아이. 딱히 갈 데도 없고, 잘 아는 동네도 없어서 나는 택시를 타고 일단 집으로 왔다.


아침 시간대의 범어동 학원가는 낯설었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옮겨가는 아이들, 잠깐 짬이 나는 시간에 PC방을 들르거나 편의점에서 군것질을 하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 범어동 학원가는 마치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에 나오는, 인류가 증발해 버린 거리 같아 보였다.


자주 가는 편의점 앞길을 주인아저씨가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이런 시간대에 초등학교 가방을 멘 아이를 보는 일이 많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편의점 아저씨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충기 아니냐? 이 시간에 학교 안 가고 여기서 뭐 해? 배고프냐?"


뭘 해야 할까. 택시 타고 오는 내내 생각했지만 결정 못 했다. 아마 PC방에 가겠지. 이 시간에 던전이나 레이드를 뛸 수 있을까? 그 정도로 사람이 모일까? 갑자기 시간이 많이 생겼는데, 어느 캐릭 아이템을 맞춰 줘야 할까? 뭐라도 먹고 갈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 편의점 아저씨가 물었다.


나는 전속력으로 아저씨에게서 도망쳤다. 집으로 가는 방향도 아니었다.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한참을 뛰다가 보니 이웃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가 보였다. 가려던 PC방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가방은 집에 놓고 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놀이터에는 취학 전 나이로 보이는 아이 둘이 모래 장난을 하고 있었다. 옆에는 엄마로 보이는 아줌마가 그네에 앉아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줌마가 앉은 그네가 앞뒤로 조금씩 흔들리면서 끼익 끼익 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아주 싫었다. 나는 방향을 확인하고 집 쪽으로 냅다 뛰었다.


집에 가방만 던져 놓고, PC방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 보니 왠지 너무 피곤했다. 거실 소파에 가방을 던져 놓고,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잠깐 누웠다. 아침에 불을 끄고 나가지 않아 방안이 환했다. 누워서 천장을 보니 구름 하나 없는 파란 하늘을 닮은 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그렇게 단정하고 말끔한 천장이 보기 싫어져서, 엎드려 누웠다.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벌써 어둑해지고 있었다. 학원 가야 하나 하고 잠깐 생각했다. 곧 그만 다니게 될 학원이다. 뭣 하러 간단 말인가. 학원비 환불이라도 해주면 PC방이라도 갈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컴퓨터를 켜려는데, 왠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거실에 나가 텔레비전을 켰다. 아이들이나 좋아할 만한 변신 로봇 만화가 줄줄이 나오는 시간이었다. 그날 뭘 먹고 뭘 하다가 다시 밤잠을 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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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복지사가 온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학교에는 말을 해놓았으니 며칠 쉬어도 좋다면서, 장례식이라든가 여러 가지를 도와주러 왔다고 했다. 같이 온 두 사람 중에 나이가 더 적어 보이는 쪽이, 요즘에는 시설도 좋아져서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했다가 같이 온 사람에게 핀잔을 들었다.


영어학원, 계속 빼먹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학교는 그렇다고 치고, 영어학원은 엄마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던 거였다. 3학년부터 다니던 학원인데, 학교 애들 말로는 대기 줄이 있는 학원이라고 했다. 엄마가 1년이나 전부터 학원 대기목록에 내 이름을 올려놓았기 때문에 제때 다닐 수 있었던 거라고 했다. 학원 첫날에 원장 선생님이 이것저것 영어로 말해보라고 시켰던 것이 생각난다. 거기서 대답을 잘하지 못하면 그 학원을 다니지 못하는 거였나 보다.


엄마 직장은 남구에 있었지만, 불타는 교육열 때문에 집은 수성구에 얻었다. 주간 근무인 아침에 수선을 떠는 걸 보면, 엄마도 아침 출근은 나만큼이나 고달프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엄마 직장 근처에 자주 갔다. 만촌역에서 2호선을 타고 다섯 정거장을 가서, 반월당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또 세 정거장을 가야 했다. 엄마는 꼭 2번 출구로 나와서 기다리라고 했다. 병원 사람들이랑 마주치기 싫어서라고 했다. 밥 먹을 때라도 편하게 먹어야지.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왜 그렇게 직장에서 먼 곳에 사냐고, 학원가 근처에서 사는 건 아들이 중고등학교 진학한 다음에 해도 되지 않냐고, 초등학교 때부터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엄마에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엄마 따라서 미용실에 가면 흔히 듣는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차이가 벌어진다고, 일찍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외아들이라서 그런지 마음 쏟는 게 다르네 하는 식으로 다들 말하고는 했다.


아빠는 교통사고로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빠는 의사나 뭐 그런 것은 아니었고, 그냥 사업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무슨 사업이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IT 쪽이라고만 대답했다. 더 자세히는 엄마도 잘 모르는 것 같아, 아빠에 대한 질문은 점점 하지 않게 되었다.


미용실에서 수다를 떠는 아줌마들 중에는 생각나는 대로 말을 툭 던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내가 엄마를 별로 닮지 않았으니까 아빠를 많이 닮았나 보다고 말하는 사람이 가끔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화를 냈다.


"아니, 얘가 왜 저를 안 닮았다는 거예요. 그냥 딱 봐도 내 아들인데."


참관 학습하는 날에 보면, 과연 붕어빵이라는 말이 맞는 그런 부모와 아이들도 있었다. 사물함 끝나는 곳에 서 있는 저 사람은 지연이 엄마고, 그 옆 사람은 서준이 아빠라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얼굴들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부모 자식 간이라고 생긴 것까지 빼다 박으면 세상이 얼마나 재미없을까. 게다가 엄마랑 똑같이 생긴 아들이나, 아빠랑 똑 닮은 딸이라니 끔찍하다. 아들, 딸이라고 엄마 아빠 생긴 것까지 닮아야 하나.


딱 봐도 내 아들이라는 엄마 말은 납득할 수 없지만, 잘 뜯어보면 내 얼굴에는 엄마 얼굴과 닮은 곳이 여러 군데 있는 것 같았다. 눈매라든가, 입모양이라든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월수금에는 태권도, 화목에는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영어 학원에 갔다. 주말에는 수학을 배웠고, 토요일에는 피아노 수업까지 있어서 게임을 길게 할 수 있는 날은 일요일 정도밖에 없었다. 학원 패턴이 비슷한 애들끼리 친구가 되었고, 같이 PC방에 다녔다.


석환이와는 같은 피아노 학원과 영어 학원을 다녀서 거의 단짝처럼 지내게 되었다. 반에서 늘 2, 3등을 하는 석환이와 어울려 다니니까 엄마도 좋아했다. 병원이 오프인 날,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오면 엄마가 석환이만 예뻐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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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에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놔두고 엄마가 사라진 그 날, 나는 친구들과 PC방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같이 하는 MMORPG는 확장팩 출시를 앞두고 세기말 현상을 겪고 있었다. 몇 달 전에는 거금을 들여도 살 수 없던 무기가 염가에 거래되고, 돈을 받고 던전에서 떨어지는 템을 몰아주는 골팟도 많았다. 게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우리 같은 라이트 유저들이 아이템을 맞출 수 있는 시기였다.


친구들과 만나 레이드 파티를 찾아보면서 경매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질풍 타격자' 도끼가 아주 싸게 나왔다면서, 질러야 하는지 고민된다고 석환이가 말했다. 경매장에서 춤을 추는 거구의 드루이드 캐릭을 보고, 동필이가 말했다.


"어, 너 드루 캐릭이네. 전사부터 템 맞춰야 하는 거 아냐? 확장팩 나오면 전사 구하는 파티가 줄을 설 텐데. 기본은 맞춰놔야지."


"아, 그런가."


드루 캐릭을 로그아웃하고, 전사 캐릭으로 들어오려는데 접속이 끊겼다. 석환이와 동필이가, 레이드 파티 잡혔다고, 빨리 들어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디를 넣고 패스워드를 치려는데 자꾸 오타가 났다. 도대체 엄마는 어디에 간 걸까. 오늘 분명 오프인 것 같은데, 취미 하나 없는 우리 엄마는 도대체 어디에 간 걸까.


전사 한 명 올 거라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친구 둘이 채팅창에 도배를 했지만, 먼저 손을 드는 전사를 안 받을 이유도 없었다. 내가 패스워드를 자꾸 틀려서 로그인을 하지 못하는 사이, 레이드 파티가 전부 꾸려졌다. 석환이와 동필이는 미안하다면서 헤드셋을 썼다.


따로 파티를 구하는 것도 애매했고, 웹툰이나 보고 있는 것도 심심해져서, 나는 도중에 PC방을 나왔다. 집에 오는 길에, 왠지 출출한 느낌이 들어 편의점에 들렀다. 새로 나온 불닭 라면 더블 치즈 맛을 먹었다. 불닭라면은 새로운 맛이 나오는 대로 다 먹어봤는데, 이건 왠지 더 매웠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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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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