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뗀 굴뚝에서 연기가 날까? 인사 담당자의 입에서 제주라는 말이 자꾸 나오니 입사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신입사원 연수 성적 꼴등이 제주에 가는 거냐, 우리 동기 중에 제주 출신이 없나 보다,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내 옆에 앉은 직원들도 진짜로 제주로 가면 어떡하냐며 두려워했다.
나는 이 회사에 먼저 입사한 지인에게 신입의 인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들어서 대강 알고 있었다. 대부분 본사를 포함한 수도권으로 배치하고, 지방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전국 곳곳의 사업장이나 지역본부로 배치한다고 했다. 연고지가 강원도인 사람을 강원지역본부로, 부산인 사람을 부산의 모 사업장으로 배치하는 식이었다.
요지는 1. 근무희망지를 어떻게 써냈는가 2. 고등학교 졸업지, 현주소 등 연고지가 어디인가 하는 '개인의 희망'과 새로운 직원을 원하는 '회사의 필요'가 적절하게 맞물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퍼즐이 딱딱 맞아 들어가듯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만족할 수는 없어도 최대한 반영한다는 인사팀의 배려가 묻어있었다.
이런 배경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눈썹이 여덟 팔(八) 자가 될 정도로 잔뜩 겁을 먹은 근처 직원들에게 설마 연고도 없고 희망도 하지 않은 제주도에 보내겠냐며, '인사팀에서 연수 잘 받으라고 겁주는 것 아닐까요?' 하며 웃어넘겼다.
한편으론 인사 담당자가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은 회사의 필요와 개인의 희망이 일치하지 않는 '어긋난 퍼즐'이 생겼다는 의미일 것이라 짐작했지만, 누군가 간다 한들 나는 아니겠지. 하며 걱정은 뒤로 미룬 채 연수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연수는 재미있었다. 지리산이 보이는 전남 구례의 산자락에서 아무 걱정 없이 배우고, 활동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마치 휴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연수원 생활이 익숙해진 2주 차의 어느 날, 기다리던 인사발령 문서가 드디어 시행됐다.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를 비롯해 현직자와 소통할 수 있는 여러 플랫폼에서 우리 회사에는 이런 질문이 달리곤 한다. '**시 / **도 알박기 가능한가요?'
한 곳에 정착해서 직장과 주거를 안정적으로 영위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잘 나타내는 질문이다. 가능하다는 댓글도, 불가능하다는 댓글도 보인다. 나도 가능할 줄 알았다. 서울 핵심지에 위치한 멋진 본사 건물로 출근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사발령 문서에서 내 이름에 손가락을 짚고 주욱- 오른쪽으로 쓸어보니 '제주'라는 글자가 나의 오만한 생각을 비웃듯 비고란에 위치해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비고란을 보지 않았다. 빼곡히 들어선 글자들 사이 내 이름을 찾기 위해선 스마트폰의 화면을 확대해야 했고, 맨 오른쪽의 비고란까지 보지 않아도 발령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발령지는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사업장이었다. 나는 용인의 본가에서 그곳까지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며 서울이 아닌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출퇴근할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 분위기가 이상했다.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어떡하냐고 물었다. 첫 날 보았던 여덟 팔자의 눈썹들이 모두 나를 향하고 있었다. 뭐지? 경기도 안성이 이 사람들에겐 그렇게나 지방인가? 안성 정도면 출퇴근할만하다고 말하는 내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제주야 제주! 못 봤어?"
"네? 제가요?"
무슨 말이지? 분명 안성이었는데? 머릿속에 물음표를 가득 채우고 문서를 다시 켜봤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비고란이 눈에 들어왔다. 그 문서를 통틀어 비고에 무언가 적혀있던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진짜였다. 진짜 제주라고 쓰여있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이런 기분일까. 동기들에게 후일담을 들어보니 그때 내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개져 있었다고 한다.
다음 날 인사팀은 많이 놀라셨죠? 하며 전화를 걸어왔다. 놀라기만 했겠나. 가족들도 친구들도 뒤집어졌다.
제주 발령자는 나 말고도 두 명이 더 있고, 우리에게 회사에서 합숙소를 지원해 줄 것이라는 말과 근무 2년 후 인사이동이 가능한데 이때 최대한 희망사항을 반영해 주겠다는 말들을 했다.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그는 이번 입사자 중 제주에 연고를 가진 사람이 없어 불가피하게 배치하게 됐다고,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조금만 고생해 달라며 발령 문서를 보고 놀랐을 신입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사람이 정말 간사하다고 느꼈다. 분명 입사 첫날의 나는 설령 누군가 가더라도 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며 제주발령의 가능성을 흘려들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예능 1박2일에서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치다가 정작 본인이 잠자리 복불복에 실패한 강호동이 떠올랐다.
나의 경우는 발령 복불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코 앞에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꿈과 현실을 오가며 뒤척였다. 나 말고 누군가 가겠지 하며 걱정을 미룬 날들만큼, 안일했던 생각만큼 쌓여버린 부채의 대가로 잠을 설친 것이다.
베개 위에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보니 '도대체 왜 나일까' 하는 궁금증만이 남았다. 왜 나를 제주도로 보내는 건지, 하필이면 그중에서도 가장 멀리 있는 전국 최남단의 사무소에 배치한 건지 이유라도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이제 와서 이유를 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으니까, '왜'라는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두 명과 이것저것 논의할 겸 모여봤다.
"안녕하세요. 저희 셋이군요. 하하.."
깊은 한숨과 적막은 우리에게 왠지 모를 유대감을 심어주었다. 둘은 나보다 네 살 많은 형들이었다. 결혼적령기가 다가오는 형들은 나보다 더 심적으로 힘들어 보였다. 대구에서 살고 있다는 한 명은 오랫동안 만나온 여자친구가 있었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했기에 결혼을 계획하던 차였다.
2년 동안 제주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다수의 생각처럼 아름답고 즐거운, 매일매일이 여행 같은 행복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에겐 인생의 큰 축을 흔들 수 있는 지진과도 같았다.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우린 필사적으로 공통점을 찾았다. 미혼, 20대 남성 등 온갖 추측을 토해냈지만 이렇다 할 결정적인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래도 인사팀을 향한 성토의 장을 열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우린 제주행 비행기 표를 샀고 합숙소에 필요한 집기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합숙소 계약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해서 일주일 동안 머물 게스트 하우스도 예약했다.
며칠이 더 지나고 연수를 마친 나는 공항으로 향했다. 이전까지 공항은 설레는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공간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웃는 사람들로 가득하던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나는 가장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