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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발목 부상을 당하면

by june

캐나다에서 두번째 부상.

여기서는 아파서도 다쳐서도 안된다. 특히나 나같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은 더더욱 그렇다. 정형외과 전문의를 처음부터 보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가정의학과 선생님께 다친 발을 보이면 애드빌을 처방받고 끝난다. 그게 아니면 하루 종일 기다릴 각오로 응급실에 가야 한다. 다친 발로 기다릴 자신이 없어 목발 신세로 Emergency care 라는 곳에 가니 이미 예약 마감이란다. 홀은 텅텅 비어있다. 알고 보니 오픈시간 한 두시간 전에 이미 환자 오픈런이다. 최소 한두시간 서서 기다려 순서표를 받고 환자가 많으면 이미 오픈과 동시에 마감을 시키는 시스템이다.

결국 응급실에 가서 최소 4시간 대기 후 엑스레이를 찍고 뼈가 이상없으면 아무런 조치 없이 집에 가라고 한다. 깁스, 붕대 이런거 필요없단다. 걸으란다. 그리고 피지오테라피(물리치료. 캐나다는 물리치료 클리닉이 따로 있다)에게 가서 운동하라고 한다. 아무래도 부상 정도가 심각한 것 같아 다시 워크인 클리닉에 가면 또다시 강력한 애드빌을 권하며 피지오를 받으라고 한다.

안되겠다 싶어 또다른 응급실에 가서 4시간을 기다려 과거 골절 경력을 피력하며 CT를 허락받고 예약하고 온다. 예약 날 우버를 타고 다시 응급실에 CT를 찍고 또다시 4시간을 기다려 결과를 듣는다. 여기서도 응급실 의사가 매우 귀찮다는 듯 뼈가 이상없으니 피지오를 받으란다. 인대 상태나 다른 건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모른다 이다. 피지오 가 하고 휙 가버린다.

피지오를 받지 않으면 더이상의 진료는 불가능해 보여 피지오를 예약한다. 정확한 진단이 없는 상태에서 의사가 불안정한 발목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제기랄, 밤에 발목 통증이 심해진다. 다음날 발목이 미친듯이 부어오른다. 이러다 영영 발목 병신 될까봐 두려움과 공포가 덮쳐 또다시 워크인 클리닉을 예약하고 초음파라도 받게 해달라고 사정한다. 의사 왈, 초음파 해봤자 아무 것도 확인 못해, 설령 인대가 완전 파열되도 해줄 거 없어, 자원 낭비야. (무료 진료의 민낯. 무한 대기의 연속)


부상 2달만에 겨우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연결을 받아 진료 예약을 한다. 대면 진료도 아니고 비디오 콜 진료이다. 카메라로 내 발목을 비춰보라더니 피지오 가서 운동받고 4달 뒤에 보자고 끊으려고 하길래 황급히 부은 발목 사진을 보여줬더니 생각보다 심하다며 대면 진료를 예약하란다. 드디어 예약 날짜가 되어 방문했지만 예약 시간 보다 1시간 반을 기다려 정형외과 의사를 보게 된다. 정형외과 의사는 일주일에 단 하루 근무해서 의사 예약 대기가 기본 2달이다. 드디어 정형외과 의사를 보는 감개무량함으로 1시간 반을 기다려 3분 대면하고 끝이다. 발목을 움직여보더니 불안정성이 있고 인대 완전 파열 가능성을 봐야겠다며 MRI를 권했다. MRI 예약 전화가 올 거란다. 전화가 안와서 물어보니 보통 대기가 8개월이란다. 헐.... 혹시라도 취소가 생기면 연락달라고 하고 포기하고 있었더니, 한 달 반 뒤, 밤 11시 취소가 생겼다고 연락을 받고 감개무량했는데, 결과를 듣기 위해 의사를 또 예약해야 하는데 그게 또 한달 뒤에나 볼 수 있다.

어쨌든 기다림 끝에 드디어 MRI 예약 날, 약속 시간 한시간 전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Emergency가 늘어나서 취소해야 한단다. 일주일 뒤 다시 오란다. 오직 결과를 듣기 위해 의사를 겨우 급하게 예약했더니 MRI 연기로 의사 약속을 취소하고 또 예약을 하기 위해 병원과 이메일로 수차례 요청한다. 이곳의 망할 클리닉들은 절대로, 절대로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문의사항이 있으면 무조건 이메일. 그것도 제대로 답을 해 주지도 않는다.

부상으로 지치고 예약 잡고 왔다 갔다 에너지 소모, 시간 낭비. 몸도 마음도 정신도 영혼도 너덜너덜 지칠대로 지치고 자포자기 상태다. 처음엔 쌍욕이 나오다가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혼자서 깁스나 부목을 구할 데도 없고, 대충 붕대로 칭칭 감아 절뚝거리며 런던 드럭에서 겨우 목발을 빌려와서 제대로 걸을 수도, 팔을 쓸 수도 없이 꼼짝없이 갇혀 굶다시피 살았다. 덕분에 일주일만에 2kg이 빠지는 감격을 맛보았으나 마음이 참 슬프고 아팠다(나중에는 고대로 다시 돌아옴). 어딜 나가고 싶어도 깁스 신발조차 구할 수가 없어 대충 요가매트를 잘라 붕대 발을 싸매야 했고 한국처럼 거리가 가깝지도 대중교통이 편리하지도 않아 매번 우버를 불러 이동해야 했다. 작년 발가락이 골절돼도 골절 된 줄도 모르고 엑스레이 한번 못찍고 병원 한 번 못가보고 그대로 부은 채로 굳어버려 제대로 구부려지지도 않는 발가락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한데 발목까지 이 지경이 되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러나 싶다. 그나마 아직 젊으니 망정이지 나중에 나이 먹고 늙어 부상이라도 당하면...밤에 잠이 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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