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그려봅니다 3
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스케쥴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내 발길 닿는대로 떠나며
혼자 즐거워하고, 혼자 지루해지고, 혼자 감동하는
그 모든 기분이 좋았다.
대학교 졸업년도에, 주변에는 해외 연수니 여행이니 이래저래 많이 다니던데
나만 비행기도 못타보고 대학 끝내려니 좀 억울했던거 같다.
그래서 한학기 휴학하고 무작정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끊어 여행을 갔다.
알바뛰면서 현지에서 자급자족 하면서 생활하면서
주말만 되면 교외로, 다른 도시로 여행을 다녔다.
아무 걱정이 없었던 때였다.
작년 여름휴가때는 코로나19로 인해 해외는 못나가고
제주도 자전거 투어를 하였다.
인터넷에 있는 말들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언덕은 많고 허벅지는 터질것 같고, 온몸은 하루종일 땀 범벅이고
그래도 그 와중에 펼쳐진 바닷가는
내가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어릴 때 아와이 슌지 영화『러브레터』를 너무 감명깊게 보았고,
그리고 2015년, 러브레터의 촬영지인 오타루를 갔다.
오타루 운하는 너무 유명해서 사람들이 많았지만, 러브레터는 이미 과거의 영화가 되어
언덕 위 촬영지는 그냥 조용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다시 내리는 눈,
거기에 맞춰 하나 둘 불이 켜지는 집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오타루 전경,
어느 관광지보다도 멋진-나만이 발견한 지도에 없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 그림을 연습하기 시작했을때 그린 마을은
서툴어도 가장 마음에 드는 한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