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끝은 안도와 아쉬움이 공존한다
영국 여행의 마침표를 찍으면서 느껴지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있다. 여행을 하면서 다치거나 혹은 아프거나, 크게 안 좋은 일을 겪지 않고 여행이 잘 끝났다는 안도감. 그리고 또다시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일종의 아쉬움. 특히 좋은 젊은 날에,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확신. 어쩌면 인생 전반에 있어서 우리가 가질 수밖에 없는, 흘러가는 시간과 젊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녹아드는 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항상 여행이 끝나면 인생을 여행에 빗대고는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성찰이 옳았음을 느끼고는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운 감정이 여행에서의 좋은 추억들을 잠식하게 하여서는 또 안될 것이다. 시간의 흘러감이라는 불가항력의 힘에 저항하며 버둥대기보다는 그나마 나에게 이러한 좋은 시간이 주어졌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응당 맞으니까. 나의 30대의 한 조각에 영국 여행이라는 좋은 이벤트를 채워 넣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음이 분명하므로.
확실히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는 많은 행운의 요소가 있었다. 항상 흐린 날씨에 비만 온다고 들었던 영국은 내가 방문했을 때 너무나 맑고 쨍한 하늘을 선사해주었고,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내가 방문한 시기의 영국은 해리 왕자의 결혼식으로 설렘이 가득했던 곳이었기 때문에 사람들도 무척 친절했다. 맛이 없다고 소문이 났던 영국 요리는 내 입에 딱이었으며, 너무나 걱정했던 스코틀랜드로의 여행은 무난하게 잘 끝났다. 어쩌면 이번 여행을 통틀어 스코틀랜드 여행이 가장 좋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아직도 에든버러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껴진 낮은 온도의, 기분 좋은 바람이 떠오른다.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완벽하게 대비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나는 단 하나는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그 어느 때이던지 여행은 나의 삶을 빛나게 해주는 좋은 벗이라는 것. 나는 여행자로서의 정체성을 키워갈 것이라고. 물론 때때로 삶은 현실이기에 여행이 중단될 수도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거나 직장에서 중역을 맡을 때에는 물론 여행을 계속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행복한 꿈을 꾼다. 은퇴 후 덥수룩한 회색 수염을 하고, 다소 줄어든 머리숱을 가질지언정 눈빛만은 항상 호기심에 가득한 채로 세상을 여행하는 나의 노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