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을 도축하면 살코기 외에 내장이나 피 등 부속물들이 나오기 마련이고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은 지방일수록 이런 부속물을 활용한 요리들이 발달한다. 잉글랜드에 블랙 푸딩이 있었다면 스코틀랜드에는 하기스와 키드니 파이가 있다. 하기스도 역시다 내장에 피와 곡물을 섞은 요리다. 역시나 펍에서 주문해 먹었었는데 블랙 푸딩과 비슷한 맛이었다. 다만 블랙 푸딩보다 곡물의 식감이 조금 더 난다고 할까. 그리고 형태도 소시지의 형태라기보다는 간 함박스테이크의 형태에 조금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이날 먹은 음식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음식은 하기스 보다는 키드니 파이 쪽이었다. 키드니는 콩팥이라는 뜻이니 동물의 콩팥으로 어떻게 파이를 만들 것인지 궁금했다. 잉글랜드에서 에일 파이라던가 코티치 파이를 맛있게 맛본 터라 상당히 기대가 되었다. 일단 처음 음식이 나왔을 때의 모양새는 합격이었다. 어린 시절 만화에서 많이 보았던 파이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이를 갈라 내용물을 한입 먹었을 때는 실망감이 엄습했다. 동물의 내장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누린내를 가지기 마련이지만은 누린내를 잡기 위한 조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듯싶었다. 아무래도 스코틀랜드를 포함한 영국 지방 자체가 강한 양념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 같았다. 그래도 계속 먹다 보니 익숙해져서 못 먹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한국 사람의 입맛에는 그다지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 한 번의 체험 만으로 키드니 파이 자체가 맛없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저 내가 키드니 파이를 먹은 식당이 조리를 잘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스코틀랜드에 왔으면 연어를 먹어야 해!
스코틀랜드에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는데 영국에 사시는 한 분이 스코틀랜드는 연어가 유명하다고 말씀해주셨다. 보통 연어라면 노르웨이나 알래스카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스코틀랜드가 연어가 유명하다는 것은 처음 듣고 알게 된 사실이었다. 현지에 계신 분이 모처럼 추천해주신 메뉴이니 마음껏 맛보기로 했다.
마늘과 버터로 조리해서 구워져 나온 연어 스테이크 향부터가 예술이었다. 포크와 나이프로 한점 베어 내어 입안에 넣으니 신선한 연어의 맛이란 이런 것이고 나하고 처음 느꼈다. 아무래도 에든버러도 바다와 인접한 항구도시이다 보니 신선한 상태의 연어를 맛볼 수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주로 연어를 회의 형태로 먹지만 원래 연어에는 기생충이 있어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주로 연어를 먹는 방식은 훈제를 하거나 구워 먹는 것이었단다. 사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연어 사랑은 꽤나 대단해서 스코틀랜드의 파운드 지폐에는 연어의 그림까지 새겨져 있다. 이제 연어 하면 스코틀랜드를 떠올려야겠다.
방목의 맛, 스코틀랜드의 양고기와 소고기
스코틀랜드는 목초지가 많다 보니 양과 소를 많이 기른다고 한다. 특히나 광우병 사태 이후 유럽에서 가축을 방목하는 방식을 선호하다 보니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건강한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양고기의 경우,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양고기들은 주로 냉동육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 스코틀랜드에서는 직접 양을 기르니 신선한 양고기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것은 램 생크 요리였다. 굳이 번역하자면 양의 정강이 요리라고나 할까. 양고기는 육향이 강하기 때문에 혹시나 모를 누린내를 방지하기 위해서 곁들일 소스로는 민트 젤리를 선택했다. 양고기의 식감은 매우 부드러웠고 몇 번 씹지도 않았는 데도 입에서 녹아내렸다. 양고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램이고 다른 하나는 머튼이다. 램은 어린 양을 의미하고 머튼은 그보다 큰 어른 양을 뜻한다. 주로 레스토랑 등에서 요리로 사용하는 것은 램이다. 양은 성장할수록 육향이 강해지기 때문에 비교적 어린 양인 램을 선호하는 것이다.
램 생크와 함께 주문한 요리는 스코틀랜드 소로 만든 서로인 스테이크였다. 스코틀랜드의 소는 헤미쉬라고도 불리는데 누런 털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나 긴 앞머리 털이 눈을 가리고 있어 귀여운 외모를 자랑한다. 그런 귀여운 녀석을 스테이크로 만들어 먹는다고 하니 약간의 죄책감이 들긴 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이니 미안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맛을 보기로 했다.
곡물로 키운 소에 비해서 마블링은 적어 입에서 살살 녹는 듯한 식감은 느낄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보다 건강한 맛처럼 느껴졌다. 먹은 후에도 속이 계속 편안하고 포만감도 오래갔던 것을 보니 자연에서 행복하게 자란 가축의 고기를 먹는 것이 인간에게도 행복한 일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든지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다.
스코틀랜드의 소 헤미쉬
스카치위스키의 세계
스코틀랜드의 위스키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술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그 원료인 곡물의 품질도 있지만 얼마나 좋은 물을 사용하는 지도 좌우한다. 아마도 스코틀랜드의 청정한 자연에서 흐르는 물도 스카치위스키의 맛을 끌어올리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위스키의 주재료는 보리이다. 맥주와 그 원료가 같은 셈인데 원료는 같아도 양조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술이 된다고 하니 신기했다.
맥주는 보리를 발효시킨 술인 반면 위스키는 보리를 발효시킨 뒤 한번 더 증류해서 얻어낸 술이다. 스카치위스키는 지역에 따라 그 맛과 향이 다르다고 한다. 하이랜드 지역은 꽃의 향기가 나고 로우랜드 지역은 오렌지 향이 난다고 하지만 막상 마셔보았을 때는 맛이 조금 차이가 나긴 했지만 그 차이가 강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워낙 도수가 높은 술이다 보니 한 잔의 술을 시음한 것만으로도 취기가 올라왔다. 더 마시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술에 취해 여행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쯤에서 자제했다. 위스키 한잔의 맛과 향으로 스코틀랜드에서의 여행을 기억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