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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아테네, 에든버러

에든버러의 매력에 빠지다

by 넙죽

근대의 아테네


에든버러의 별칭 중 하나가 근대의 아테네이다. 아테네라고 하면 고대 그리스의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인데 왜 멀고 먼 스코틀랜드의 도시인 에든버러를 근대의 아테네라고 부르는 것일까. 처음에는 칼튼 언덕에 위치한 멋들어진 그리스식 구조물들 때문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언덕 위에 멋들어진 구조물들은 원래 나폴레옹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들로 고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모방하여지었다고 한다. 한데 그것만으로는 에든버러를 근대의 아테네라고 부르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하다.


그런데 에든버러 시내를 구경하다 보니 비로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고대 아테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뛰어난 철학자들을 포함한 세기의 지성인들을 배출한 문화도시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근대의 에든버러도 아테네 못지않게 수많은 지성인들을 배출해낸 도시였던 것이다.


에든버러가 배출한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애덤 스미스가 있다. 나는 애덤 스미스를 영국 사람으로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가 스코틀랜드 사람이라고까지는 알지 못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그의 국부론은 초기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중요한 경제이론이다. 에든버러가 배출한 또 다른 지성인은 데이비드 흄이다. 철학자였던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하여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철학이 관념적인 명제에 집중하는 것보다 조금 더 인간의 가치관이나 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에든버러에서 유명한 지식인으로는 월터 스콧이 있다. 우리에게 '아이반호'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이 작가는 스코틀랜드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에든버러에 위치한 그의 기념탑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이 작가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지 알게 해 주는지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근대의 문화를 이끈 경제학자, 철학자, 문학가를 배출한 이 도시를 근대의 아테네라고 불러주어도 손색은 없을 것 같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월터스콧 기념탑


자연을 품은 도시와 그 자연을 닮아 강인한 도시의 사람들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이지만 참 자연이 아름다운 도시였다. 내가 이 도시에서 가장 사랑한 것은 아서스싯이었다. 아서의 의자를 뜻을 가진 이 돌산은 영국의 고대 영웅 아서가 앉았을 것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사실 크게 관련은 없어 보인다. 도시 한가운데에 이렇게 큰 돌산이 있다니 스코틀랜드는 그대로 스코틀랜드구나 싶었다. 비록 일정이 촉박하여 하일랜드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에든버러에서 아서스 싯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코틀랜드의 자연이 얼마나 험준하고 척박한 지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아서스 싯

사실 사람은 자신이 사는 지역의 환경을 닮아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험준한 산악지형을 터전으로 삼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다. 그리고 완고한 자존심까지도. 현재 스코틀랜드는 영국에 속해있으면서 자치권을 보장받는 형태로 잉글랜드와 공존하고 있다. 꽤 오랜 기간 이 두 곳은 공존해왔지만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았다. 특히 최근 영국의 EU 탈퇴가 확정되면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달리 EU에 잔류하고 싶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 내부에서 독립의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로버트 브루스와 윌리엄 월레스의 시대에서 몇백 년이 지났지만 스코틀랜드 인들의 저항정신은 아직까지 그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나 보다.


스코틀랜드 의회

공간의 배제로 표현한 그들의 권력


에든버러에는 아주 재밌는 공간이 하나 있다. 로열 마일이다. 왕실의 길이라는 뜻인데 에든버러 성에서부터 홀리루드 궁전까지 이어지는 길을 말한다.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에든버러를 구경하기 위해서 꼭 들러야 할 곳이다. 이 곳이 재밌는 이유는 과거에는 이 길이 평민들은 밟지 못하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초등학생이 자신의 책상에 금을 그어놓고 짝꿍에게 넘어오지 말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과 같은 참으로 유치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역사적으로 봐도 이런 사례들이 참 많더라.


에딘버러 성
홀리루드 궁전
로얄 마일

인간이 권력을 가지게 되면 그것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단순히 과시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과시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과 다른 존재임을 과시함으로써 쉽사리 자신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권력을 과시하는 방식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 귀금속으로 몸을 치장하거나 화려하고 좋은 옷으로 자신을 장식하는 방법 등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공간의 배제이다. 공간이라는 자원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왕좌가 바로 그것이다. 이 방식은 알게 모르게 현대에서도 많이 이루어진다.


현대사회에서는 돈이 곧 권력으로 작용하는데 지불하는 돈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공간의 넓이에 차등을 두는 것이다. 비행기에서 이코노미와 비즈니스, 퍼스트 클래스의 좌석의 공간이 다르고 호텔에서도 가격에 따라 스탠더드룸이나 스위트룸과 같이 공간을 다르게 구분하지 않은가. 그리고 사무실에서도 그렇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조금 더 넓은 개인 공간을 가질 수 있고 자리도 사무실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보다 조용하고 안락한 자리를 배정받을 수 있다.


공간이라는 것도 매우 한정적인 자원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공간의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차이가 고착화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닐까.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현재의 차이가 뒤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사회가 보다 건전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매달 월급을 아끼고 모으면 그래도 언젠가는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집 한 칸은 마련할 수 있는 사회. 그런 건전하고 선량한 사회가 오기를 개인적으로는 간절히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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