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차 한잔의 여유, 애프터눈 티

차와 함께 누리는 호화로움

by 넙죽

오후에 나른할 때는 애프터눈 티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나른해진다. 그럴 때마다 커피나 차를 한잔 마시고는 한다. 그러면 그나마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구들과 만나면 농담 삼아 카페인은 직장인의 필수 영양소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만큼 카페인은 오후의 나른함을 쫓아주고 조금 더 활력 있는 하루를 보내게 해 준다. 영국인들도 오후에 차를 마시지만 우리가 마시는 것보다 조금 거하게 마신다. 흔히 말하는 애프터눈 티다.


삼단 트레이의 위엄이 보이는가


영국에서 애프터눈 티를 시키면 3단 트레이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은 음식이 담겨 나온다. 트레이의 1단에는 로스트비프 버거를 포함해 샌드위치 종류들이 놓여 있었다. 아마 본격적으로 차를 마시기 전 오후의 허기를 달래라는 의미인 것 같다. 2단에는 디저트로 채워져 있다. 샌드위치로 배를 채운 후 디저트로 먹으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디저트로 먹기에 양이 많다고 느끼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다양한 식감과 맛의 디저트들의 조합이라 그런지 맛이 물린다는 느낌 없이 잘 먹었다. 마지막으로 3단에는 영국의 전통 간식인 스콘이 있다. 주로 잼이나 크림을 발라먹는다. 이제 배가 불러 음식이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한 입 맛보니 또 음식이 들어가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다. 3단에 놓인 음식들을 한 단 한 단 해치우니 마치 무협지에 등장하는 도장 깨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였던 것은 로스트 비프 버거와 토마토 치즈 샌드위치
2단에는 달콤한 디저트의 향연이 펼쳐진다.
마지막은 역시나 잼을 발라 먹는 스콘이다

애프터눈 티의 음식들도 눈이 돌아가지만 애프터눈의 주인공은 엄연히 차다. 영국인들은 차를 정말 사랑하는데 그들이 사랑하는 차는 특히 홍차이다. 영국에서 홍차가 사랑받게 된 것은 인도의 영향이 크다. 인도 지역에서 생산된 차가 영국으로 퍼지면서 급속도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특히 아삼 지역의 홍차가 인기란다. 홍차는 사실 우연한 기회에 발견된 차이다. 갓 딴 찻잎이 먼바다를 넘어 운송되는 동안 발효되어 붉은빛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홍차는 차 그대로 맑게 마셔도 되지만 영국인들은 주로 우유를 부어 마신다. 이른바 밀크티다. 처음 영국에서 차를 마실 때 우유를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고민이었는데 아시는 분에게 여쭤본 결과 자기의 취향대로 부으면 된단다. 처음에는 홍차에 왜 우유를 붓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막상 마셔보니 홍차의 쌉싸름한 맛을 부드럽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맛있는 음식과 차를 마시니 오후의 피로가 날아갔다.

얼마만큼의 우유를 붓는지는 그대의 자유다


차 한잔이 불러들인 뼈아픈 전쟁


차 한잔이 전쟁을 불러왔다면 믿겠는가. 미국의 독립전쟁은 이 차 하나로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은 영국에서 건너간 이민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영국과 마찬가지로 차를 마시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이들이 마시는 차에 과한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한 것이다. 분노한 미국인들은 인디언으로 분장해 보스턴으로 운송되는 차를 불태우거나 바다에 버렸다. 이것이 미국 독립전쟁의 신호탄이었던 보스턴 차 사건이다.


당시 영국은 차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미국에 식민지라는 이유로 과한 세금을 부과하면서 참정권은 주지 않았다. 그러나 머나먼 타 대륙에 있다 해도 미국인들 또한 참정권을 위해 싸운 영국인들의 후예이다. 대표 없이 과세는 없다며 왕들에게 대헌장과 권리청원을 내민, 자신들과 같은 조상을 가진 미국인들을 영국인들은 얕보았던 것 같다.


보스턴 차 사건을 시작으로 전개된 미국의 독립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차로 인해 시작된 이 전쟁으로 인해 영원할 것 같았던 영국의 전성기도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keyword
이전 16화소소한 그들의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