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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넙죽 Oct 09. 2023

러시아의 품격을 느끼다

러시아의 고급 식당 문화 체험하기

블랙 캐비어와 벨루가 보드카


  캐비어와 보드카만큼 러시아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있을까. 그러나 실제로 제대로 된 캐비어와 보드카를 맛보기는 쉽지 않다. 캐비어의 경우에는 러시아어로 이끄라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이끄라라는 단어는 생선알을 통칭하는 단어일뿐, 우리가 흔히 아는 블랙 캐비어, 철갑상어의 알은 쵸르니 이끄라라고 부른다. 



  보통 레드 캐비어는 크라스나야 이끄라로 불리며 이것은 연어알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색으로 구분할 때의 일이고, 검은 빛을 띠고 생선알 같이 생겼다하여 다 철갑상어의 알인것도 아니다. 색을 입힌 이미테이션일 수도 있고 파이크 등 다른 생선의 알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면 경계해야 한다.

  한번은 마트에서 이끄라를 싸게 할인하기에 신나게 사서 먹고 사무실에 자랑을 했는데 현지 직원들이 그 가격일리 없다며 황당해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역시나 철갑상어의 알이 아닌 연어과  생선의 알에 색만 입힌 이미테이션 캐비어였다. 한번 뒤통수를  얼얼하게 맞은 탓인지 제대로 된 캐비어를 맛보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캐비어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맸지만 생각보다 캐비어를 먹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캐비어 전문 가게에서 제대로 된 캐비어를 맛볼 수 있다하여 찾아갔다. 사실  현지라도 캐비어는 고급 식재료이므로 배가 부르게 먹으려고 하면  집안 기둥뿌리까지 뽑힐 것 같았다. 그저 맛만 보려는 요량으로 보드카와 블랙 캐비어 약간을 주문 했다.

  캐비어와 마찬가지도 보드카 또한 저렴하고 적당한 품질의 것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왕 기분 내는 것, 보드카도 고급으로. 알도 철갑상어의 알이니까 보드카도 철갑상어가 새겨진 벨루가로 주문했다.



   러시아 사람들도 자주 먹을 수 있는 가격대가 아니다 보니 옆자리 러시아인들도 설레하는 것이 느껴졌다. 보드카와 철갑상어 알 이 둘의 조합은 어떤 파괴력을 낼까? 일단 생수로 입안을 가다듬고 캐비어를 살짝 맛본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안에 퍼지고 곧바로 녹아내린다. 약간의 맛을 더하기 위한 소금간 외에는 그 무엇도 더해지지 않은 맛. 비린내는 없고 생선에서 느껴지는 바다 향만이 마지막까지 감돈다. 조금 너스레를 떨어 아내에게 생선류에서 맛볼 수 있는 감칠맛과 고소함의 극치를 맛본 것 같다고 말했고 아내도 이에 동의했다.


 

  처음 먹어본 캐비어는 아니었지만 본토에서 먹어본 것은 역시나 달랐다. 보드카쪽도 훌륭했다. 강한 알콜향 보다는 부드러운 향이 코를 자극했고 목넘김이 다른 보드카보다 부드러웠다. 보드카 한모금이 입안을 재정비해주고 캐비어가 다시 미각을 지배했다. 완벽한 조합. 만족했다.



역사는 허명을 전하지 않지, 카페 푸시킨


  모스크바에서 유명한 레스토랑은 많다. 그러나 맛과 전통, 고급스러움을 모두 잡은 곳은 카페 푸시킨이다. 카페라는 호칭이 앞에 붙어 있어서 혹여 커피 파는 곳에서 무슨 밥을 먹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러시아에서 카페란 커피도 팔고 꽤 괜찮은 식사도 파는 곳이다. 러시아 음식이 먹고 싶다면 카페라고 이름 붙은 곳을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지인들에게 추천할 정도이니.


  

 인테리어에서부터 전통이 묻어나고 직원들의 몸가짐과 옷차림에서도 품격이 묻어난다. 가격에서도 품격이 넘쳐흘러 걱정이지만 다행히 평일 점심은 저렴한 런치 메뉴가 있어 연가를 쓰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왔다.



  나의 외모에서 부유한 동양인의 풍모가 묻어나왔는지 처음에는 2층의 좋은 좌석에 안내해주더니 런치 메뉴 이야기를 꺼내자 웃으면서 1층으로 다시 내려가란다. 공산주의의 태동지에서 자본주의의 참맛을 맛봤다. 다시 자리를 잡고 차분히 런치 메뉴를 주문했다. 목적의식에 충실한 자세다.



    전형적인 코스인 3코스로 구성되었지만 특이한 점은 디저트가 빠지고 그 자리에 수프가 자리를 잡았다는 것. 역시 수프의 나라 러시아 다웠다. 일관성있었다. 샐러드, 수프, 메인으로 구성된 코스였고 나는 훈제 오리를 곁들인 즈키니를 샐러드로, 수프는 허브의 일종인 소렐로 만든 수프, 마지막으로 송어요리를 메인요리로 선택했다.



 훈제오리가 곁들여진다기에 한국에서 주로 먹던 두툼한 오리 슬라이스를 생각했는데 제대로 된 훈제 오리가 하몽에 견줄만 한 모양새로 올라와있어 제법 놀랐다. 러시아 요리에 빠지지 않은 우크롭(딜)이 향을 더해주고 바닥에 깔린 즈키니는 수분을 가득 머금어 부드러웠다. 가장 놀란 것은 플레이팅이었는데 고급 식당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수프는 허브인 소렐이 첨가되었기 때문인지 약간의 산미가 있지만 베이스는 진하고 고소했고 곁들여진 고기완자나 작은 메추리알이 있어 든든했다. 식탁의 주인공인 송어가 등장했다. 메뉴판에는 '트라우트'로만 적혀져 있어 어떻게 조리해나올지 궁금했는데 약간의 전분을 묻혀 튀겨내듯이 구워냈다. 곁들여진 소스와 감자도 훌륭했다. 재료 본연의 맛 자체가 좋았다.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홍차로 마무리하며 테이블을 떠났다. 수고로움에 감사하기 위한 약간의 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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