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의 세례
러시아 곳곳에서 정교회 성당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요일 아침이면 정교회 성당에서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동네를 울리기 시작한다. 종교를 배격하는 공산주의의 본산이었던 곳이라기에는 너무도 종교색이 강한 분위기다. 그만큼 러시아에서 정교회가 깊숙히 자리잡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러시아에는 언제 정교회가 자리잡게 되었을까? 지금에야 정교회라고 하면 러시아를 떠올리지만 정교회는 원래 동로마제국의 유산이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도 천년 가까이 번성했던 동로마제국 또는 비잔틴 제국이 원래 정교회의 중심이었고 정교회는 동방정교회로 불렸다.
러시아에 동방정교회를 들여온 것은 키예프 공국의 블라미디르 대공이었다. 당시 러시아 민족은 여러개의 크고 작은 부락들을 통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서로가 다른 신들을 모시고 있다보니 하나가 되기 어려웠다. 또한 당시 유럽은 종교를 중심으로 거대한 문화권들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과의 우호적인 연대나 교류를 위해서 그들과 같은 종교를 가지는 것이 유리했다. 블라디미르 대공의 선택은 당시 지중해 지역의 문명국이자 부국이었던 비잔틴 제국의 동방정교회였다. 비잔틴 제국이 예전부터 러시아의 중요한 교역상대였다는 이유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자신부터 솔선수범하여 정교회의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러시아는 비잔틴제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종교적 유사성이 비잔틴 제국과의 든든한 연대를 이끌었음인지 비잔틴 제국의 황녀가 러시아에 시집을 오는 일도 있었다.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멸망한 이후에 러시아는 비잔틴 제국의 후계자임을 자칭하며 자신들을 제3의 로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쩌면 그 때문인지 정교회가 가장 뿌리깊게 정착하고 가장 번성한 국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