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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여왕, 빅토리아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열다

by 넙죽

승리의 여왕이 이끈 영국의 전성기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전성기의 대영제국을 이르는 말이다 전 세계 대륙 곳곳에 제국에 영토가 있어 그 영토 전체가 어둠으로 뒤덮일 일이 없을 만큼 방대한 제국. 이 시기 영국을 이끈 여왕은 빅토리아였다. 이름 자체에도 승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여왕. 당시에는 왕이 독자적으로 정치를 행하기보다는 이미 많은 권력이 의회로 이양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 여왕 자체가 가지는 상징성과 권위는 막강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공식 직함은 영국의 여왕이자 인도의 여제. 유럽의 작은 섬나라에서부터 시작한 영국에게는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 앨버트 공 기념탑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인 앨버트 공


켄싱턴 파크 남쪽에 위치한 알버트 공 기념탑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광을 잘 보여주는 구조물이다. 기념탑 자체는 여왕의 부군인 알버트 공을 기리는 것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당시 영국의 위상을 잘 알 수 있다. 금빛으로 장식된, 높게 솟은 탑의 모습도 화려하지만 탑의 네 모서리를 장식한 조각들이 더 눈에 띄었다. 흰 대리석으로 장식된 조각들은 영국이 지배한 각 대륙을 상징한다. 재미있는 것은 각 조각상에는 그 대륙을 대표하는 동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버펄로가 아프리카는 낙타가 아시아는 코끼리가 조각되어있다. 그렇다면 유럽은 어떤 동물이 장식되어있을까? 바로 흰 암소이다. 흰 암소가 유럽의 상징인 이유는 유럽의 기원이자 어원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에우로페라는 여인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에우로페라는 여인을 사랑하였는데 이 여인이 임신을 하자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가 질투를 하게 된다. 그녀를 흰 암 소로 변하게 한 뒤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게 했는데 괴롭힘을 당하던 중에 그녀가 바다를 건너 다다른 곳이 유럽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앨버트 기념탑의 조각상들이 말해주듯이 전 세계를 제패했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영국의 전성기였으며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을 자랑스러워하는 영국인들이 많다. 때문에 여왕이 재위하면 나라가 잘 된다는 속설이 전해질 정도니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현재 영국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그녀의 성품이 훌륭하기도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 시절의 후광도 미치지 않았을까. 먼 이국 땅의 우리도 영국을 여왕의 나라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정도니 말이다.


버킹엄 궁전 앞 광장에 위치한 빅토리아 여왕의 조각상

제국주의의 폐해


영국인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역사이겠지만 영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는 국가들의 입장은 조금 다를 것 같다. 강한 무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전 세계에 식민지를 만들고 그곳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해서 자국민들을 부강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위에 세워진 행복. 물론 영국만이 제국주의 성향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당시에 한다는 국가들은 다 자신보다 약한 나라들을 자신의 것으로 하려는 경쟁을 했으니까. 프랑스도 그랬고 스페인도 그랬다. 심지어 일본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같은 행보를 보였다 하여 영국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제국주의를 내세워 다른 나라들을 착취했던 과거의 제국들은 영토를 잃었음에도 그동안의 착취로 얻은 부강함으로 아직까지 잘 살고 있다. 반대로 착취당한 국가들은 그때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소위 잘 나가는 국가들을 부러워한다. 그 나라들이 행한 악행은 잊은 채. 못 사는 국가들을 동정한다. 그 나라가 가진 상처의 역사에 눈 가린 채. 역사를 더 나아가 현재를 균형 있게 보는 시선은 숨겨진 이면까지 보는 것이 아닐지.


제국주의 당시 영국이 다른 나라에게서 약탈한 전리품들은 현재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빅토리아 자손들의 비극


빅토리아 여왕과 그녀의 남편인 앨버트 공은 매우 다정한 시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였는지 둘 사이에는 자손이 많았다. 그 자손들은 유럽의 왕가나 유력한 귀족 가문과 결혼해 존귀한 신분을 유지하게 된다. 전성기 영국이었으니 영국의 여왕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싶었던 왕가들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랬기 때문인지 빅토리아 여왕에게는 유럽의 할머니라는 별칭이 붙기도 하였다. 유럽 왕가의 왕이나 공주들이 그녀의 손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결혼들은 유럽의 왕가들에게 재앙을 불러왔다. 빅토리아 여왕의 자손들은 혈우병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혈우병이란 일종의 유전병으로 상처에서 난 피가 응고되지 않는 병이다. 과다출혈로 죽게 되는 치명적인 병이니 자손이 귀한 왕가들에서는 타격이 컸다. 특히 러시아 황실에는 큰 피해가 되었다. 러시아 로마노프 황가는 황태자 알렉세이의 혈우병 치료를 위하여 백방으로 치료법을 수소문하게 되었는데, 그중 수도승 라스푸틴이라는 인물이 황실에 잡입해 황제 부부의 신뢰를 얻고 황실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는 국정에까지 개입하여 러시아 국민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그 미움은 황실에 대한 증오로까지 번져 결국 러시아 전제군주제 몰락에 불을 지피게 되었다.


앨버트 공의 이름을 딴 극장, 로열 앨버트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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