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llup Lady
"나는 커피가 싫어"
간만에 만난 고교 동창 윤경을 앞에 두고 혜선이 한 말이었다.
"너는 초저녁에 만나도, 점심 때 만나도 항상 술이냐! 가끔은 우아하게 주말 아침 10시쯤 만나 같이 커피도 마시고 브런치도 먹으면 좋잖아"
윤경이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혜선에게 말했다. 혜선은 소주 한 잔을 입 안에 털어 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거의 유일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고교 동창 서윤경.
고등학교 졸업 후 급격히 가세가 기운 혜선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에 고교시절 친했던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친했던 무리들 중 유일한 고졸이기에 느껴지는 열등감도 그랬지만 그들과는 사는 세계가 너무 달랐기에 느껴지는 이질감 때문이기도 했다.
매일 살기 위해 이 악물고 사회 생활을 하는 혜선과 낭만에 가득 찬 캠퍼스 생활을 즐기는 친구들과는 그 삶의 궤적이 달랐다. 몇몇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또 몇몇은 억지로 밀어내기도 했지만 오로지 윤경만은 멀어지지 않았다.
'거머리 같은 지지배'
혜선이 윤경에게 붙인 별명이었다.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상당히 예쁜 외모에 밝은 성격까지 갖춘 아이라 어디를 가도 주목 받는 친구였다. 삶에 찌들어 사무실에 출근할 때 빼고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묶은 머리.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인 혜선과는 정반대였다. 부모님 모두 공무원인 남 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기도 공무원인 녀석. 크게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큰 세상풍파는 겪지 않아도 되는 친구였다. 세상의 따뜻한 햇살과 사랑을 가득 받은 아이. 그것이 서윤경이었다.
그런 부족함 없는 친구가 자신에게는 거의 집착에 가까운 애착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혜선도 윤경을 밀어내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윤경의 애착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오늘도 윤경은 퇴근하고나서 남자친구도 만나지 않고 바로 혜선이 일하는 카페에 달려왔다. 카페라떼를 하나 시켜놓고 아르바이트 마감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너는 커피 만드는 일을 하는 애가 커피가 싫다면 어떻게 하니?"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윤경이 대꾸했다.
"커피를 만드는 것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거야! 나는 같은 값이면 커피보다 소주가 더 좋아"
혜선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사실 그랬다 3,000원에서 4,000원 사이의 커피를 마시느니 소주를 마시는게 나았다. 소주를 마시면 세상 모르게 편하게 잠이라도 잘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날이면 늦은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런 날이면 잊고 있었던 설움이 몰려와 한없이 서글퍼졌다. 그럴 때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다 지쳐 잠을 잤다. 그래서 혜선은 커피가 싫다
커피가 싫은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혜선은 커피를 매개로 한 수 많은 만남을 보았다. 카페에서 소개팅을 하는 사람들, 친구를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헤어지는 사람들.
커피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들.
처음에는 커피값이 너무 아까웠고 커피를 마시며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빚을 빨리 갚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 전체가 이 암담한 구렁텅이에게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점점 커피를 마시면서 만들어지는 누군가와의 인간관계 그것이 혜선에게는 버거웠다. 누군가와 마주앉아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면 무너질 것 같았다. 더 이상 이 악물고 살 수 없을 것 같았다.그리고 이런 약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