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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체온은 왜 37.5도일까?

항상성 유지가 중요한 이유

by JuneK
삶은 늘 그렇게 균형점을 찾아 몸부림치는 것 같다. 자연이 정화 기능을 갖고 있듯 삶도 그렇다. 일을 하지 않는 삶이 일에 찌들어 가는 동안 상상했던 것만큼 행복하지는 않다. 오히려 거의 쓸모를 다해 버리기도, 그리고 버리지도 못하는 몽당연필 같다. 쥐고 쓰자니 손에 걸쳐지지 않고 버리자니 아직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존재.

알레 작가님의 글 <삶은 애쓰지 않아도 균형점을 찾아간다.> 중 발췌
https://brunch.co.kr/@alejjandro/385




대략 2년 전 퇴사 이후로 독립하게 되면서 삶의 방식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내가 미친 듯이 일로 달려들어 이외에 모든 것들을 무시하는 사이 몸은 여러 가지 신호를 통해 경고를 보내고 있었고 경고를 반복적으로 무시하자 나의 몸은 마지막으로 '공황발작'이라는 형태로 나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너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마. 내가 너한테 버겁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나도 이제 파업이야.'라고. 공황장애라니... 연예인이나 걸리는 호강 병이라고 생각했고 정신력이 약해 빠져서 저런다고 생각했던 나는 거의 첫 발작이 있고 난 후 거의 1년간 소매 안쪽에, 지갑에, 파우치에, 차에 인데놀을 항상 챙기고 나서야 외출할 수 있었다. 유난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느 날 차 안에서 신호대기 중에 불현듯, 하지만 아주 선명하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때문에 차를 급히 세웠지만 손이 닿는 거리에 약이 없어 '아...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던 경험 이후로는 어쩔 수 없이 조심하게 되었다. 이후 몰입하게 되었던 요가와 명상을 통해 마음이 작용하는 원리에 대해 깨닫고 나서는 더 이상 두려움도 발작도 생기지 않았다. 1년 정도가 지나자 약 없이도 외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언젠가 길게 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몸 쓰는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삶이 단순해지자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졌지만, 나는 한 가지를 꼭 지키기로 했다. "적어도 내가 하는 소리를 듣자. 뭐라고 하는지는 들어줘야 한다."

내가 하는 소리를 잘 들어주려면 최대한 넘실대는 파동을 줄여 조용히 흐를 수 있도록 해야 했고 외부 자극이 될만한, 약속이나 이벤트를 만들지 않았다. 거의 2년 넘게 해외여행도 쉬었다. 금토일 금도깨비로 옆나라 물장구라도 치고 와야 코가 뚫렸던, 역마살이 있는 나에게는 놀라운 결심이기도 했다. 이내 물살이 잔잔해지자 나는 드디어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늘은 어떻구나. 지금은 어떻구나. 지금 불편하구나. 와 같은.

최우선 과제는 잠이었다. 오랜 시간 잠을 터부시 했던 것에 대한 언급을 다른 글에서 한 적이 있는데(https://brunch.co.kr/@junekook/22) 거의 3년 넘게 평균 4시간 남짓 자고 있던 나를 보며 병원에서는 반드시 잠을 더 자야만 한다고 했다. 자는 시간이 아깝다는 강박이 있던 나는 강제로 잠들기 시작했다. 당시 마음에 큰 위안에 되던 사람과의 통화에 한동안 집착 했던 이유도, 양을 몇만 마리를 세어봐도 해결되지 않았던 나의 불면의 밤에 종알종알 웃고 떠들다 보면 너무 자연스럽게 나를 나른하게 만들었기 때문인데, 마법 같던 그의 존재와 불면의 밤 거의 모두를 촘촘히 채워 준 성실함은 고마움 그 이상이었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밤에는 약도 먹고 청광차단 안경을 쓰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8시간쯤을 자기 시작하자, 예민함이 줄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몸소 경험했던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몸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에 대해 명확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이 결심 이후 영양전문가과정 수업을 수료 중에 있다. 기본적인 인체 시스템과 영양학 기초에 대해 다루고 있는 수업이다. 지금도 여전히 일요일 오전이면 수업에 나간다. 내가 입으로 넣은 것이 나를 구성하게 된다는 것에 동의가 되자 더 이상 나쁜 것들을 생각 없이 먹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2교시만 되면 내가 유당분해효소가 있거나 말거나 일단 우유 200미리 한 팩을 토 달지 않고 비워내야 했던 교육을 받았던 나는 3교시 쉬는 시간에 어김없이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음에도 우유 먹기를 멈출 생각은 못했다. 선생님이 먹으라고 하셨고, 심지어 아이들이 먹는지도 확인하라고 하셨고, 나는 최대한 말 잘 듣는 어린이이고 싶었기에. 너무 슬프다. 지금 생각해도 9살 그 어린이가 너무 안쓰럽다. 배가 아파 설사를 하고 장내 유익균은 이미 다 쓸려내려 가 어떤 영양분도 흡수할 수 없었던 상태임에도 나는 맞지도 않는 내 몸에 소 젖을 때려 넣었던 것이다. 사람 새끼가 도대체 소 젖은 뭐 한다고 먹었을까.

나를 알고 내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좋은 음식을 챙겨주는 것. 잘 자게 돕는 것.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게 잘 움직여주는 것. 지금도 여전히 신경 쓰고 공들이고 있는 일들이다. 모든 게 과하면 안 되듯이 이 과정에서 엄격한 식단에 식이장애를 겪기도 했고 과한 운동이 면역 저하를 가져오기도 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직접 몸으로 겪고 나니 결국 몸은 homeostasis(항상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인간이 37.5도의 정온 동물인 이유도, 그 체온에서 가장 호르몬 분비가 활발하고 면역체계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알레작가님의 글에서 "삶은 균형점을 찾아 몸부림친다"라는 말을 나는 직접 검증했다. 과할 수도 부족할 수도 없는 게 몸뿐일까. 삶도 그랬던 것이다. 이제 나에게 남은 과제는 평정과 고요, 안정에 집착하는 마음조차 버리는 연습이다.


"하루하루는 최선을 다하기,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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