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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Jul 21. 2023

이름을 쓰려거든 주홍색으로 쓰세요.

과연 그것은 저주인가?

 어린 마음에 누군가 너무나 미웠을 때 내가 최선을 다해 미워한 방법은, 꾸덕한 재질의, 하얀 실을 조금 잡아당겨 종이를 돌돌 벗겨내어 쓰던 빨간 색연필로 노트에다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쓴 일이다. (사실 나중에 커서 방을 정리하다 그 주문이 담긴 노트를 발견했을 때조차도 뭔가 불경스러운, 고백해야만 할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지금도 부득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좀처럼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는 일은 피한다. 다소 꺼려지기 때문. 다 학습과 경험이 만든 산물일 거다. 대체 왜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안 되는 걸까. 언제부터 우리는 그런 학습을 했을까. 무당이 쓰는 부적에 피를 이용했다더라, 한명회의 살생부가 빨간색이라더라 여러 설이 있지만, 친절히 누군가 찾아 놓은 위키피디아를 발췌하면 


"Writing names in red is thought to bring bad omens, including failure and death. (...) This shamanistic belief originated in China as red calligraphy was reserved for execution decrees.

"이름을 빨간색으로 표기하는 것은 실패나 죽음을 상징한다. 과거 중국에서 사형수들의 이름을 빨간색으로 표기한 것이 유래..."


 그럼 중국은 왜 붉은색을 이토록 차별했을까. 서예 특유의 문화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는데, 황제가 쓰는 이름, 혹은 조상이 쓰는 이름에 포함된 한자는 그 글자 자체를 온전히 표기하지 않고 한 글자를 제외하는 법칙이 있다. 


그것을 '결하'라고 부른다. 그 뜻은 천자 또는 귀인의 이름을 쓸 때 휘 하기 위하여 그 자의 최후의 획을 빼고 쓰지 아니 함.으로 풀이되어 있다. 가장 유력한 근거로 진시황이 빨간색을 독점하기 위해 이름에 빨간색을 사용한 모든 이들을 죽였다는 설이 있다. 




그러니 사실 빨간색은 "Royal 즉, 독점 가능한 권력"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인주의 '주', 이 원료는 붉은빛 수은 화합물이다. 낙관을 인주로 찍는 이유 역시 수은의 독성 덕에 문서의 부패를 막고 수명을 길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포토샵으로 붉은색을 내어 전자 서명을 손쉽게 하기도 하지만, 사실 인주의 붉은빛은 복사된 붉은 낙인과는 그 발색의 차이가 있기에 이는 흑백으로 사본을 만든 이후에도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실제로 숯을 이용한 검은 먹보다 돌가루를 곱게 빻아 만들어야 하니 희소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 빛깔의 가치를 가르쳐주신 스승에게 감사를 전한다. 사실 제대로 된 인주나 주묵(붉은 먹)은 몹시 비싼 값에 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잠시 그 구경의 기회를 공유한다. 


스승님은 주묵의 벼루를 따로 쓰신다고 한다. 붓을 씻을 때도 이 위에 떨어뜨려 최대한 오래 쓰신다고. 거의 주황빛에 가깝다.
고급 먹들은 먹의 뒷면에 생산지까지도 표기하고 있다. 어떻게 포장할지 패키지의 색 배합까지 고민한 디자인



진시황이 나에게 까지 영향을 줬다니. 나는 그 친구의 이름을 연거푸 쓰며 되려 그 친구를 더욱 고귀하게 했던 것일까. 이젠 과감히 주홍빛 글씨로 이름을 써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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