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빨리 풀리면 좋겠다
2013년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변화무쌍한 해였다. 해가 뜨면 일어나서 학교를 가고 수업을 듣고 집에 오는 일상의 반복이었지만, 그 정형화된 행위의 반복이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었던 것은 난 캘리포니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자연, 활기찬 캠퍼스, 작지만 깨끗하고 안전한 마을 이 모든 것들이 좋았지만 모든 것들을 연결시켜 온전한 행복을 만들어준 건 다름 아닌 완벽한 날씨였다.
난 어릴 적부터 유독 추위를 많이 탔다. 어릴 적에는 겨울 내내 감기를 달고 살다시피 했고 심한 감기로 병원에 숱하게 입원했다. 덕분에 크리스마스를 산타할아버지 의사 선생님들과 보낸 웃픈 경험도 있다. 어린 시절 공기가 제법 쌀쌀해지는 10월 말부터 3월까지는 매일 아침이 옷 갈아입기 전쟁이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난 예쁘게 보이고 싶어 했고 되지도 않는 옷태를 신경 썼다. 엄마 아빠는 무조건 한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는 내복을 입길 강요했고 겨울 내내 두껍고 무겁고 못생긴 패딩만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패션에 자유를 얻은 후로 난 늘 추운 겨울을 보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에도 살색 스타킹을 신고 출근을 한 걸 본 회사 동료들은 역시 20대는 다르다느니 청춘이라느니 하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웬만한 한파가 아니고선 두꺼운 롱 패딩을 입는 일은 손에 꼽았다. 패션 외에도 내가 얇게 입고 다니는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 바깥 날씨에 대비해 꽁꽁 무장한 날이면 지하철 안과 밖의 온도차로 인해 멀미하기 일쑤였고 패딩으로 2배쯤 늘어난 내 몸통으로는 지하철 틈바구니에서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늘도 난 스타킹에 치마 그리고 코트를 입었다. 이번 주에는 날이 풀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인지 오늘 아침에도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다. 거진 매일 요가를 하고 지난주에는 어깨 마사지까지 받았는데도 내 어깨가 이리도 아프고 우뚝 솟은 승모근이 내려올 줄은 모르는 것은 분명 겨우내 추위로 움츠러든 자세 때문일 것이다. 정류장에서 학원까지 10분 남짓한 거리를 걸으며 아침부터 오늘 하루의 컨디션이 저조할 것 같다는 불길함을 점지하는 건 분명 이 추위 때문이다.
빨리 날이 풀리면 좋겠다. 조금 덜 마른 머리칼에 바람이 불어도 내 머리가 송두리째 얼어붙는 듯한 이 느낌만 사라진다면, 그리고 이른 아침 출근길에도 내가 어깨를 활짝 핀 채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길 기다릴 수만 있다면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니면 정말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에 가서 요가강사를 하며 살아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누가 날 시켜줄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