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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다른 나, 부캐를 자각하다

저는 글 쓰는 부캐가 따로 있습니다만

내 안의 다른 나, 부캐를 자각하다


최근, 박현안 님의 글, 내 글의 나이는 몇 살일까? 를 놓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질문이 좋으니, 생각이 깊어지는 모양입니다. 일단 내 글의 나이는 과연 몇 살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죠. 사실 저는 내 글의 나이가 몇 살인지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글이 내 나이보다 더 나이 들었는지 덜 나이 들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글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나게 해주는 도구이니, 자신의 글이 보다 젊어 보이고 싶다는 건, 생각이 더 젊길 바라는 욕망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반대로 자신의 글이 더 나이 들길 바란다는 건 좀 더 생각이 깊어지고 싶은 욕망이 있으리라 생각하고요. 물론 나이가 들었다고 반드시 생각이 깊은 건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나이가 듦에 따라 생각이 깊다고 생각하니까요. 일단 저는 젊어 보이고 싶은 욕망은 없는 편이니, 제 글이 제 나이보다 더 나이 들었길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대략 50대처럼 보이면 좋겠는데요?


저는 종종 제 내면을 스스로 돌아보곤 합니다. 거울을 보면 겉으로 드러난 나를 보는 것처럼, 글쓰기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쓴 글이 알아서 글을 쓰는 때가 오는데요. 그때 비로소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나와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만나 새로운 나가 만들어지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또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 게 꽤 어색한데요.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성숙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것 같습니다. 만일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가 어색하다면, 내가 키우는 부캐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부캐라고 말하니까 좀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나요? 글쓰기를 통해 내가 키우는 부캐를 만나고, 나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내면의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멋준오빠라는 부캐를 키우고 있습니다. 부캐와 부캐를 대신해 글을 쓰는 저 자신이 가끔 달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저 자신은 도전을 싫어하고 스스로 한계를 짓는 사람인데요. 기존의 나였다면 하지 않았을 일도, 멋준오빠라면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도전해보곤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도 중독될까 봐 혹은 귀찮아서 하지 않았었는데, 멋준오빠라는 닉네임을 통해 익명성을 가지니까 저도 모르게 숨겨왔던 용기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alookso의 도움이기도 하지만 매일 글쓰기도 나름 잘 지켜가면서 하고 있고요.


저는 부캐를 만들고 키우면서 보다 손쉽게 도전할 수 있었고, 도전의 과정을 겪으면서 성숙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과거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가 어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저는 과거의 저와 제가 키우는 부캐가 합쳐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나였다면 할 수 없었을 일이 있었다면, 스스로 한계를 짓는 사람이었다면, 스스로 새로운 부캐를 키워본다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마치 예능, 놀면 뭐하니? 에서 유재석 씨가 가수도 되었다가 드러머도 되었다가 라면도 파는 것처럼 말이에요.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키우는 또 다른 내가 해보는 거라고 한다면, 왠지 용기 내서 도전해보고 싶어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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