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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진게 돈뿐이야, 액수가 적어서 그렇지

인간은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해야만 하는 동물입니다만


나는 가진게 돈뿐이야, 액수가 적어서 그렇지


나는 가진게 돈뿐이야
액수가 적어서 그렇지


가진 게 돈밖에 없다는 말을 들으면 부자들이나 하는 소리 같지만, 저는 가끔씩 가진 게 돈밖에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소유물은 사실상 돈으로 환원될 수 있으니, 비록 액수가 적더라도 가진 건 돈 뿐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살짝 속물 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가진 건 돈뿐이고, 줄 수 있는 게 돈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드는데, 요즘은 여행과 관광에 돈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하늘 길이 막히면서 해외여행에 대한 갈망은 점점 커져가는데, 다녀와 봐야 자가격리나 할 테니 여행을 포기하던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이제 슬슬 자가격리가 면제되는 지역이 점차 늘어나는 모양입니다. 현대카드 PRIVIA 항공에 따르면, 각 지역별로 제시하는 조건을 이행하는 경우 격리를 면제하고 있는데요. 제가 확인한 시점을 기준으로 몰디브, 하와이, 괌, 방콕, 싱가포르, 프랑스, 독일, 영국, 스위스, 스페인, 체코, 미국, 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를 격리 없이 방문하고 있어서 그동안 여행을 가지 못해 답답했던 사람들에게 꿀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해외에 나갔다가 국내로 입국하는 경우, 백신을 다 맞고 PCR 음성확인서를 다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7일간 자가격리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경계하기 때문에 취하는 조치라고 생각합니다만, 예전처럼 확진자가 몇 백 명밖에 안 나오던 상황이라면 모를까 매일 10만 명이 넘는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해외 입국자에게만 유독 자가격리를 강화하는 게 특별히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아직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 정부 방역 방침을 따르기야 하겠지만 정권이 새롭게 바뀐다면 과연 해외 귀국자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자가격리 조치가 계속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네요. 관광산업이야말로 코로나 확산으로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은 곳일 텐데,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 허들을 둘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행의 목적은 휴양, 관광, 설렘 등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여행의 본질은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방문하여 낯선 나를 발견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집-학교-학원-집-학교-학원을 반복하는 학생, 집-회사-집-회사를 반복하는 직장인 등 자신이 살아가는 일상을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곳에 나를 던져둔다면 그동안 마주하지 않았던 또 다른 자아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마련입니다. 또 다른 자아라고 하니 뭔가 좀 부담스러우니, 일종의 부캐라고 말하면 좀 친숙하려나요. 결혼식 때 신부 친구가 받는 부케랑 발음이 비슷해서 글을 쓰면서도 살짝 어색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합시다. 글쓰기를 통해 부캐를 만날 수 있다는 말씀을 일전에 드린 적이 있는데요.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게 작문부캐라면,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건 여행부캐입니다.


저는 최근 인문학적개소리 님께서 써주셨던 글에서 소개되었던 프랑스 철학자 바타유의 이야기가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관련하여 정확하게 인용하고 싶어서 출처를 여쭤보았는데, 인문학적개소리 님께서 철학자가 주장한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주신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요약된 내용을 다시금 인용해 봅니다.


프랑스 철학자 바타유는 인간을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해야만 하는 동물로 보았는데요.
합법적으로 에너지를 낭비할만한 놀잇거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놀잇거리가 없을 때, 인간은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벌이고 만다고 합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여행 가는 게 어렵게 되면서, 여행에 쓰고자 했던 비용이 명품 소비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하는 분석이 있습니다. 최깨비 님께서 명품 소비 관련한 기사를 갈무리하면서 소개해주셨는데요. 저도 일부분 동의하는 바입니다. 확실히 인간은 뭐가 되었든 간에 낭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과거에 게임을 하거나 아이돌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푹 빠져서 덕질을 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바라보곤 했었는데요. 지금은 아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매사에 반드시 필요한 것만 하고 사는 게 과연 행복한가를 놓고 생각해보았을 때, 저는 그렇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임, 덕질 등을 통해 합법적으로 자신의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죠. 특히 덕질은 인간이 가진 종교성과 연결되는데요.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상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사는 게 현실의 답답함을 버텨낼 수 있는 탈출구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그런 마음을 부정할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저는 낭비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 이런 낭비를 마냥 나쁘게만 바라볼 순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놀잇거리가 없어지면 인간은 서로 죽이는 전쟁을 일으킨다는데,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다양하게 합법적으로 낭비하도록 촉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행을 떠나면 자연스럽게 평소보다 더 많이 낭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잠자는 장소도 평소에 지불하는 비용보다 비싸죠. 게다가 이왕 여행 온 거 가장 맛있는 것만 골라먹을 테니 식비도 올라갈 테고요. 평소 고맙게 생각하던 분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선물도 사야 하니, 평소라면 쓰지 않았을 지출이 생겨나게 됩니다. 외국 여행지에 처음 나가서 뭔가 소비하게 되면 처음에는 원화 환율을 생각하여 계산하면서 소비하다가도 어느새 해당 지역 물가에 익숙해져서 일일이 계산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게 되죠. 여행을 통해 벌어지는 소비가 만들어내는 부캐를 만나게 되는 셈입니다. 이런 부캐를 만나게 되면, 마음이 좀 넉넉해진다고나 할까요. 물론 귀국하고 나서 한참 뒤 받아 든 카드명세서를 보면 넉넉했던 마음을 가진 과거의 부캐가 후회스러울 때가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또 다른 자아를 만나기 위해, 여행부캐를 만나기 위해 꼭 여행을 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여행 가는 게 영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대놓고 겨냥하여 여행 부캐를 강조하는 곳이 있죠. 바로 가상공간에서 펼쳐지는 메타버스 관광입니다. 제페토는 네이버의 자회사이자, 카메라 앱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SNOW가 출시한 메타버스 플랫폼입니다. 현재 전 세계 2억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아바타로 불려지는 부캐들의 향연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 가상공간과 현실세계의 벽이 점점 줄어드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https://youtu.be/OHpV4y6PKQw







알쓸신잡에 출연하여 건축물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력을 다양한 예시를 통해 소개해주셨던 유현준 교수님의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에도 메타버스에 관련한 이야기가 올라왔었는데요. 정말 영상 전반적으로 탁월한 영감을 주는 게 많은데요. 그중 한 가지 인상적인 대목이 있어서 두 군데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https://youtu.be/J2p4li82Fdg?t=362


메타버스가 확실하게 이전 세대와 차별화되는 것은 실시간으로 아바타 혹은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이 동영상으로 나하고 커뮤니케이션이 되느냐 안 되느냐인데,
근데 우리는 이미 이거를 벌써 한 십몇 년 전에 체험했죠. 온라인 게임에서 이미 체험을 했단 말이에요.

_ 셜록현준, 메타버스 부동산을 먼저 선점하라 中



메타버스 가상공간에서 활동하고 여행을 떠나는 게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요. 게임은 초창기 낭비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이제 그 게임하던 세대들이 부모가 되었으니 단순히 게임을 낭비라고만 보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낭비하는 동물이니, 이런 합법적인 놀잇거리를 지속적으로 던져주는 게 생존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봐요.




https://youtu.be/J2p4li82Fdg?t=746

분당과 일산이 있는데, 일산 땅값 잘 안 올라요. 분당은 계속 오르고. 그 이유가 뭐냐 하면은 일산이라는 데는 파주라고 하는 넓은 땅이 옆에 있거든요. 여기가 어느 정도 도시가 형성되어서 밀도 있게 되는 것들이 만들어질 만하면 옆에 또 다른 아파트 단지를 만들고 또 확장시키고 계속해서 무한대로 확장이 가능해요. 그런데 분당은 주변이 도시로 쌓여있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렇기 때문에 이게 제한이 많이 돼 있어요. 그래서 마치 맨해튼이 물에 둘러싸여 맨해튼 땅값이 올라가는 것처럼 분당은 어느 정도 희소가치가 확보되기 때문에 판교나 이런데 가치가 올라가는 거거든요. 마찬가지로 가상공간은 일산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이곳에서 확장해서 나가면 원래 이 중심지가 힘을 잃을 수는 있겠죠. 근데 우리가 한번 모인 곳이 웬만해서는 한번 인정받으면. 예를 들어 일산 같은 경우도 라페스타라든지 이런 데는 한번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 데가 있잖아요.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또 끌어들이게 되고. 어떤 아바타가 오게 할 것이냐, 그리고 어떤 샵들이 거기에 자리를 잡게 할 것이냐. MD 구성이라고 보통 얘길 하는데, 쇼핑몰을 만들면 어떤 코너에다가 어떤 명품샵을 넣고, 가게를 어떻게 배치하고, 이런 걸 연구를 많이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공간의 확장은 되게 쉽지마는 사람들을 끌어당겨서 구성했다는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은 쉽게 카피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그러한 특성 때문에 오히려 더 다채로운 공간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해요.

_ 셜록현준, 메타버스 부동산을 먼저 선점하라 中






당연한 소리지만 이제 가치를 매기는 게 점차 쓸모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희소성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상화폐를 도대체 어디에다 써? 하면서 그 쓸모를 의심했던 게 비록 몇 년 전까지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까지도 이더리움을 제외하고는 그 쓸모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습니다. 그런데 메타버스 세계가 다가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상공간에서 사용되는 화폐가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면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해질 것입니다. 이젠 쓸모를 고려하기 전에 합법적인 낭비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지금까지 인간은 합법적인 낭비가 필요한 동물이라는 말을 처음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해 보았습니다. 소비를 통해 만나든 여행을 통해 만나든 뭐든지 의미 붙이기 나름이라고, 자신의 부캐를 만나는 건 내면의 성장을 위해서 참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진 게 돈뿐인 이 세상, 내 안의 부캐를 만나기 위해 합법적으로 낭비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게 여행이든, 소비든, 가상세계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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