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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이 귀찮음을 이겨야만 나타나는

사람은 바뀌지 않습니다만

불편함이 귀찮음을 이겨야만 나타나는




1. 인간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 늙어가고 있으므로 우리의 신체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진보적 가치에 관심을 갖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진 사람도 기득권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유보와 퇴보의 길을 걷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죠. 마치 이런 변화를 지켜보자면, 점점 무질서도가 높아진다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각 사람이 가진 본질이나 기질은 평생 바뀌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 노력을 통해 겉모습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도 내면 깊숙하게 깔려있는 모습은 바꿀 수 없다고 믿죠.


여기에서 믿는다는 표현이 참 중요한데, 실제 사실 여부와 상관없는 주관적인 견해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대신 주관적인 견해를 갖고 세상을 바라보지만, 제가 모르는 저 너머의 조각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하는 편입니다. 사람은 각자의 시각에 맞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데요. 어쩔 수 없이 편견/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없기에 언젠간 자신의 입장을 정해야 할 때가 온다고 봅니다. 즉, 맞고 틀리고를 입증할 수 없는 영역, 상관없이 믿을 수밖에 없는 영역이 온다는 것이겠죠.


저는 적어도 25세가 넘으면 옳든 그르든 자기만의 색깔을 갖춰나간다고 봅니다. 이것 역시 앞서 말했던 내면 깊숙이 깔려있는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의 연장선상인데요.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때는 자신의 주변 친구들과 비슷한 형태로 교육을 받기 때문에 삶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기 어렵죠. 그동안 받았던 교육은 각자도생을 위한 유예기간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제 자기만의 색깔에 맞춰 세상에서 생존법을 익혀나가며 살아가야겠죠. 그렇게 얻어진 생존법으로 살다 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익숙해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 방법만이 옳다고 믿게 되는 순간, 꼰대가 탄생하게 되는 법이죠.


한때 교육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돌아보면 교육을 통해 가장 많이 변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을 교육하던 저 자신이었죠. 그러니까 교육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겠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교만한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은 언젠가 바뀐다]고 생각하는 제 대전제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라고 대전제를 세워놓고 생각해야 좀 덜 실망하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변화를 주려고 시도하지만, 대부분 원래 습관대로 회귀하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새해 시작이 되면 헬스장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사라지게 되는 이유일 겁니다. 따라서 저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를 대전제로 세워놓고, 인간이 변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예외 사항을 다루어 보고자 하는데요. 이게 기대했던 사람에게 실망하지도 않고,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1. 변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예외 사항 1


좀 더 와닿는 예시를 위해 제 이야기를 꺼내볼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강요하는 일은 죽어도 하지 않겠다는 묘한 고집이 있었습니다. 저 스스로 논리적으로 납득되지 않으면,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죠. 물론 제 입장에서 납득이 중요하지, 그 내용이 사실에 기반한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언제나 제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관철하고, 제 생각이 맞았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입증시키는 게 중요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저도 하기 싫은 걸 억지로라도 하게 되는 계기가 몇 가지 있었는데요.




고집하면 떠오르는 장가의 사장님 짤 재활용




첫째, 생존하기 위한 필수요소가 없을 때입니다. 저는 공동체 문화, 커뮤니티 문화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 별 거 없습니다. 최소 20~30명 정도 되는 수준의 사람들에게 일정 시간 동안 둘러싸여 있는 환경이 매우 중요하죠. 모든 사람과 다 친하게 지낼 수도 없지만, 굳이 다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저를 싫어하는 사람만 별로 없다면 충분하죠. 그런 공간은 교회가 될 수도 있고, 동호회 활동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만일 제 삶에 이런 요소가 없다면, 저는 심리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죠. 제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부재할 때, 해당 요소를 채우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라도 시작하게 되더라고요.


대표적인 게 COVID-19으로 인한 모든 커뮤니티 활동 잠정 중단이 불러온 코로나 우울증이 되겠습니다.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게 제 평생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불편을 주는 일은 없었는데요. 이번 COVID-19 때문에 제가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저를 심리적으로 매우 압박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저만 이런 기분을 느낀 건 아니라지만, 이번 COVID-19을 통해 공동체 문화, 커뮤니티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 그대로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라는 흘러간 유행어 가사가 확 와닿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죽어도 하기 싫어했던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죠. 남들은 생존을 위해서 운동을 한다던데, 저도 생존을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게 육체적인 생존이 아니라 정신적인 생존을 위해 시작한 것이지만요. 비록 COVID-19이라 활발하게 커뮤니티 활동은 못했지만 주기적으로 만나서 함께 운동이라도 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것만으로 저는 나름 커뮤니티 활동을 한다고 스스로 뇌를 속였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운동을 시작해서 친해진 사람들과 함께 매주 한 번씩 러닝을 하는데요. 사람들마다 각자 달리는 속도는 제멋대로지만, 어쨌든 매주 7km 러닝을 별다른 일이 없다면 꾸준히 수행합니다. 운동하기 싫어하는 제가 러닝을 한다는 건 COVID-19 이전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죠.



토요일 오전 7km 러닝 기록 from NIKE RUN CLUB App.




2-2. 변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예외 사항 2


둘째, 불편함이 귀찮음을 이겨낼 때입니다. 저는 외향적인 모습에 대비되게 상당히 게으른 편입니다. 성격이 외향적이면 매사에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할 것 같지만, 남들이 볼 때만 열심히 하는 편이죠. 남들이 보지 않을 때의 자아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자아가 많이 다릅니다. 이런 면에서 역시 부캐가 여러 개라고 볼 수 있겠네요. 남들이 보고 있는 환경에서는 힘을 발휘해 의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혼자만의 환경에서는 매우 게으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게으른 모습을 알거나 보는 건 제 가족들이거나 저와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뿐인데요. 상대적으로 덜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긴장하면서 눈치 보고 지내다가 뭔가 주변 분위기가 편안하다 싶으면 자신을 놓아버리나 봅니다.


이렇게 게으른 저도 청소를 안 하다가 불편한 일이 생기면 홧김에 청소를 몰아서 해버리는데요.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분노는 나의 힘]이 되겠습니다. 불편함이 주는 짜증과 분노가 점점 쌓이다가 폭발하면, 귀찮음을 몰아내는 에너지가 되는 거죠. 뭔가 제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도리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게 결과적으로 상황이 해결될 때가 있는데요. 왠지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청소를 바로 하기보다 집안을 더 어지럽히는 게 무조건 청소할 수밖에 없어서 오히려 청소하기가 더 쉽다고 설명하면 이해가 되시려나요.


alookso에서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글을 오래 쓸 줄 몰랐는데, 이제는 하루라도 글을 안 쓰면 손에 가시가 돋는 것 같습니다. 주변 친구들에게 요즘 매일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면, 귀찮아서 어떻게 매일 글을 쓰냐고 되물을 때가 있는데요. 아무리 글쓰기를 좋아해도 저도 사람인데 말로 하면 되는 걸 굳이 정리해서 글로 쓰는 건 귀찮죠. 그런데 글을 쓰지 않으면 왠지 찜찜하고 불편해지니까, 이 불편함이 제 귀찮음을 이겨내고 있기 때문에 매일 글을 쓰는 겁니다. 좋은 습관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요. 하면 좋은 건 다 알지만 하기에는 귀찮고. 그런데 하지 않았을 때 주는 불편함이 귀찮음을 이겨내고 있기 때문에 매일 글을 쓰고 계신 분들은 글을 쓰고 계신 게 아닌가요? 뇌피셜이니까 아님 말고.


실제로 읽어본 책은 아닙니다만, 관련 내용을 검색하다 보니 알게 된 책이 있는데요. 제목인 [정말 하고 싶은데 너무 하기 싫어]가 참 와닿아서 가져와 봅니다. 저자 로먼 겔페린은 심리학자인데, 작심삼일하게 되는 사람의 심리를 놓고 분석하고 있는데요. 의지와 정신력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라 본능의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본능적으로 쾌락을 늘리고, 불쾌를 줄이려고 하는 쾌락 본능이 있다고 하는데요. 다시 말해서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인간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쾌락이라면 추구하고 불쾌하면 벗어나려고 하는 본능이 인간을 움직인다는 겁니다. 역시 귀찮음을 이겨낼 정도로 큰 불편함이 있지 않는 한,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정말 하고 싶은데 너무 하기 싫어




2-3. 변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예외 사항 3


셋째, 전혀 다른 집단의 각 사람이 제게 똑같은 조언을 할 때입니다. 저도 어지간히 남의 말 잘 안 듣기로 유명했던 사람이라, 다른 사람이 제게 조언을 하면 일단 한 귀로 흘려버리곤 했는데요. 나름 사회화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이런 모습이 종종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역시 사람 쉽게 잘 안 변하죠? 그런데 남의 말 잘 안 듣는 제가 몇 번 다른 사람의 조언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였던 때가 있는데요. 바로 전혀 다른 집단의 각 사람이 제게 똑같은 말을 꺼냈을 때입니다.


COVID-19 초기에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지쳐있던 어느 날, 친했던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에 식사 약속을 몰아서 잡았습니다. 그때는 사적 모임을 제재하는 일도 없었다지만, 백신이 아직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만남을 가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죠. 오랜만에 만나 인사하면서 서로 안부를 나누었을 때, 제게 앞으로 미래지향적인 일을 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썩 좋진 않았죠. 마치 제가 과거지향적인 사람이라는 걸 지적당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해당 주차에 만났던 5~6명의 사람들이 제게 뉘앙스는 달랐지만 똑같이 미래지향적인 일을 하라고 조언해 주었죠. 각기 다른 집단에서 알게 된 사람인데, 제게 똑같은 조언을 해주고 있다는 건 삼인성호라는 말이 있듯 뭔가 믿을만한 이야기겠다 싶었습니다. 하루 정도 날을 잡아 곰곰이 스스로 저는 어떤 사람인지 분석해 보았죠.


문제 해결은 사실을 인정하여 대전제로 받아들이는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저는 안정을 지향하는 사람이라 일반적으로 과거지향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는데요. 과거지향적인 걸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점만 빼면, 과거지향적이라는 단어는 사실 좋다 나쁘다 따질 수 없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이죠. 그래서 저는 제가 과거지향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과거지향적인 제가 어떻게 미래지향적인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는데요. 스스로 정리했던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영어를 잘하려면 외국인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게 가장 빠른 것처럼, 미래지향적인 일을 하려면 미래지향적인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거죠.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상대적으로 불안한 미래에 몸을 던지는 게 익숙하기 때문에 어쩌면 저처럼 과거지향적인 사람을 만나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게 필요할 수도 있겠다 예상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난 후, 저는 사람을 볼 때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를 중점적으로 보게 되었는데요. 그러고 나서 정말 신기하게도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죠.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꽤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가 미래지향적인 사람을 알아본 건 지극히 제가 운이 좋아서였겠지만, 제 기본적인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더라면 기회가 왔어도 잡지 못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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