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고3. 수능을 앞둔 즈음. 야자를 마치고 다들 집으로 귀가한다. 현관에서 실내화를 신발로 갈아 신는다. 덜덜 떨어서 발끝은 차가워졌고 앉아서 졸았던 탓에 발은 팅팅 부어있었다. 규정으로 신어야만 했던 캔디 구두에 차갑게 부은 발을 구겨 넣고 있는데 옆에서 친구가 그런다.
“넌 뭐가 그렇게 좋아서 맨날 웃어?”
지금 생각해보면 시비조인가 싶을 정도다. 그러고 보니 내가 웃고 있었구나. 다행히도 그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물어본 거라 싸우자는 의도는 아니었을 거다.
종종 이 말이 나를 찾아온다. 누가 내게 그 질문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저 그 후로 내가 혼자 웃고 있을 때마다 종종 찾아올 뿐이다.
나는 사실 웃지 않았다. 고등학교 내내. 거의. 내 기억은 그렇다. 지각을 엄청 많이 해서 늘 동동거리는 아침을 보냈고 담임에게 혼나며 하루를 시작했다. 또 죄책감은 많아서 죽을상을 하고 하루를 보냈다. 지각한 주제에 그걸 잘못이라고 생각했으면 툴툴 털어버리고 하하호호 웃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왕따는 아니었지만 스스로 친구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행복할 수 없는 아이였다. 착하고 성실하고 재밌는 몇몇 친구들은 나를 점심 먹는 무리에 끼워주었다. 이동학습 있을 땐 같이 가주고 자리도 같이 앉게 해 주었다. 나도 그 친구들이 좋았다. 그 친구들은 참 재밌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했다. 곁에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는 친구들이었다. 미묘하게 나는 알고 있었다. 뭔가 나는 달랐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여기저기에 추스르지 못한 감정과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흩어져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것들은 나를 더디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야자시간에 나는 혼자 기도실로 올라가 싸온 도시락을 먹었다. 기도실은 추웠고 도시락도 차가웠다. 엄마가 만들어준 볶음김치는 정말 맛있지만 그 반찬 하나만 매일 싸오니 친구들과 같이 공유하기가 좀 부끄러웠다. 그리고 혼자 있고 싶어서였다. 밥을 다 먹고는 그냥 앉아서 졸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냥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했다.
강도사님은 내가 중고등부에 왔을 때 두 번째 세 번째 교역자였다. 전도사님이셨다가 강도사가 되셨다. 꽤나 열정적이셨다. 무척 열정적이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마음이 가득해 보였다. 땀 흘리며 눈물 흘리며 열심히 침을 튀기며 설교하고 기도하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그 강도사님이 내가 회장으로 있던 해에 중간에 어떤 일인지 모르지만, 뭔가 교회와의 마찰로 중간에 사임하셨다. 더 이상 강도사님을 볼 수 없다는 생각과 슬픔에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그 시기를 황량한 모래바람이 불었던 날이라 불렀다. 하나님은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떼어놓으실까 하는 원망이 들었다.
그때의 얼굴 근육 움직임이 기억난다. 어떻게 웃었는지 모르게 어색하게 움직이던 근육들 말이다. 그런 내게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냐니. 이 기억들이 서로 부딪혀서 기억을 꺼내는 과정이 난감하고 어리둥절할 뿐이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추워져서 발끝이 시려 그런가. 얼어붙은 발끝처럼 내 얼굴도 굳어버렸을 텐데도 나, 웃고 있었나 보다. 찬 바람, 밤 기운이 차라리 반가왔던 것일까.
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