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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나 Oct 09. 2020

거울을 보며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거다. 거울을 보며 늘 생각했다. 내가 보는 이 상이 진짜 내 모습일까? 남들도 나를 볼 때 이 모습을 보는 걸까? 남들 눈에는 다른 모습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보는 다른 사람이 진짜 저 사람의 모습이 맞을까?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고 다른 사람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건 아닐까?

나는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건 상대적이라고 생각했다. 너에겐 진리일 수 있는 것이 나에겐 거짓일 수 있고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문학시간에 시나 소설의 해석을 들으면 “염세적”. “회의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아! 나를 표현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염세적이다: 세상을 싫어하고 모든 일을 어둡고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것. / 회의적이다: 어떤 일에 의심을 품은 것.)

그 대신 ‘정말 그러한가?’ 이러한 태도로 연구에 매진하지 않고 관조적이었다. (관조적이다: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보는 것, 행동력 없이 무관심하게 보거나 수수방관하는 것.)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내 안의 고요한 호수에 작은 돌멩이 하나 허락하지 않으려고, 겉으론 무표정이었지만 속으로는 성문을 지키려 무진장 애를 썼다. 그래서 내게 날아온 돌멩이든 낙엽이든 불어오는 바람이든 어린아이의 손길이든지 내게 오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데 집중했고 내게 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냥 움직이는 건. 죄다 방어했다.

어쩌면 또 아빠 탓을 해야 하겠다. 나는 불리해지면 자꾸 아빠 탓을 한다. 아빠의 잘못된 행동 뒤에 숨어서 나의 잘못은 가리고 싶은 것이다. 아빠는 나와 동생에게, 아니다, 엄마에게까지도 정신교육을 시켰다. 어떤 사람은 잔소리, 훈계,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정신교육이란 말이 딱 알맞게 들린다. 비슷하게는 한풀이, 푸념 정도가 있겠다. 아빠는 특히 술을 마시면 자신의 말을 무릎 꿇고 듣게 했다. 아빠의 말은 법이고 진리이며 우리는 그냥 듣기만 하면 된다. 가끔 물을 때 “네”하면 그만이다.

티비가 틀어져 있으면 아빠를 보는 척하면서 잠깐씩 티비를 보면 된다. 웃긴 게 나올 땐 참 곤욕이다. 조금이라도 웃어서 아빠가 눈치채면 거기서 분위기는 겁나 살벌해지거나 맞을 만큼에서 더 맞게 되거나 20-30분 무릎 꿇는 시간이 추가되는 거다. 아예 티비도 못 보게 끈 채로 고행의 시간이 시작되면 시선은 바닥을 향한다. 장판의 무늬가 어떤 규칙으로 배열되어있는지 세심히 살핀다. 아빠의 발가락도 세심히 보고 아빠의 손도 본다. 괜히 방바닥에 있는 머리카락이 거슬린다. 엄마는 멀찌감치 설거지를 하거나 방바닥을 닦는다. 그럼 뒤통수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로 아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군. 하고 예측을 한다. 또 아빠의 말꼬리를 잡고 혼자 말대꾸를 하며 반항을 한다. “아니. 난 아닌데. 너는 그렇겠지. 넌 그렇게 살아. 난 싫어. 또 저 소리. 진짜 지겹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인생이 고달프지. 저처럼 자식들도 그렇게 불행하게 살길 바라나? 맨날 돈. 돈.”

몇 대 맞을래로 마무리될 때가 있다. 그럼 대충 아빠가 납득 가능한 범위에서 넉넉히 부른다. 내 생각엔 그다지 맞을 일이 아닌데도 그냥 열 대 부른다. 다섯 대 혹은 세 대 불렀다간 다시 잔소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냥 맞고 끝내는 게 속 편하다. 괜찮은 날은 손바닥이고 심한 날은 종아리다. 진짜 아빠가 눈이 돌아가버리면 매는 없고 두껍고 딱딱한 손바닥만 있는 거다. 나나 동생이나 맞을 때 잘못했다고 싹싹 빌거나 한 대 맞고 아프다고 호들갑(?) 떠는 스타일이 아니다. 정말 자존심이 건드려지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기분이 몹시 나빠서 매도 꼿꼿이 맞는다. 속으로 욕하면서. 설령 눈물이 계속 나고 몸이 부들부들 떨릴지라도. 다 맞으면 우리 방으로 건너갈 수 있다. 그럼 난 곧장 화장실로 가서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씻고 찬물에 두 손을 담가 뜨거워진 손바닥을 식힌다. 얼얼하고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손을 어루만지며 손에게 사과한다. “불쌍한 내 손. 주인 잘못 만나서 고생하네. 미안하다.”

아빠는 늘 말했다.

친구? 니가 인생을 지금 몰라서 그러는데 친구는 세상에 없어. 돈이 있어야 친구도 있는 거다. 돈 없으면 친구도 다 떠나고 없다. 생각해봐라. 씨벌 돈이 있어야 밖에서 밥 먹고 술도 먹는 거지. 한두 번 내줘도 주는 사람도 짜증 나고 매번 받는 사람도 자존심 상해서 못 만나는 거야. 그렇게 얄팍한 게 친구야. 다 필요 없어. 돈만 있으면 다 돼.

인생은 어차피 혼자야. 인생은 어차피 혼자. 아무도 없어. 가족. 그게 전부야.

넌 왜 사냐? 아빤 죽지 못해 산다. 죽고 싶어. 맨날 죽고 싶어. 사는 게 재미가 하나도 없고. 고통이다 고통. 아빠 사주에 결혼도 자식도 없다고 했는데 사주 어디고 기어이 장가가고 자식 낳아 기르니까 후회된다. 그냥 혼자 살다가 죽을 걸. 맘대로 죽지도 못하고 사는 게 고통스럽고 그렇다.

부부 사이도 돈이 있어야 안 싸운다. 돈 많은 사람이랑 결혼해야 돼. 널 누가 데려갈란가는 모르겠지마는 잘 들어라. 둘 다 백날 일하고 집에 와서 피곤해서 잠자기 바쁘고 또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고. 그게 뭔 재미가 있겄냐. 주말엔 좀 쉬고. 좋은 회사 다녀야 퇴근도 일찍 해서 집에 오고 시간을 보내지. 안 그러냐? 휴가도 낼 수 있는 데로 직장 다녀야 허고. 휴가 내면 좋은 데라도 놀라가고 그래야 부부 사이도 좋아질 거 아니야. 니미 돈 없으면 죽도 밥도 안 되고 그냥 맨날 서로 니 잘못이네 내 잘못이네 하면서 싸우다가 이혼하는 거야. 돈 있으면 싸우겠냐? 맨날 좋은 데 가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희희낙락 하지?

교회에서 너들한테 뭐 좋은 말 해주면 아이고 좋다 고맙다 하지? 세상 불쌍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야. 정신력이 똑바르지 못하니까 남들 얘기에 휘둘리며 사는 거지. 안 그러냐? 너는 지금 한참 빠졌으니까 듣기 싫겠지만 생각해봐라. 걔들이 뭐 좋을 게 있다고 너들한테 잘 해주겄냐? 다 나중에 헌금 받아쳐먹을라고 그러는 거야. 사기꾼이 뭐 나 사기꾼이오 하면서 다가오디?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하며 살살 꾀는 게 목사들이야. 아빠가 건축현장에 교회도 안 가봤겠냐? 다 똑같애 교회 다니는 놈들이 더해. 돈도 제대로 안 주고 말야. 뒤에서 다 돈 얘기밖에 안 해. 너는 아빠가 막 크게 얘기하고 욕하고 그래서 싫다 그랬지? 살아봐라. 나 같은 사람이 진짜배기야.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들 다 뒤에서 호박씨 까는 놈들이다. 너한테 빼먹을 거 없어봐라. 너 신경도 안 쓸 거다 아마. 그러니까 교회에서도 너네들한테 성공하라고 하는 거야. 그래야 빼먹을 수 있으니까.

...  얼마나 들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내면화했는지 아직도 생생하다. 그게 참 억울하고 억울하다. 나는 아빠한테 어렸을 적부터 이런 말을 듣고 자랐다. 아빠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나는 아빠 집에서 기생하는 생명체일 뿐이었으니까. 아빠 돈으로 먹고 자고 학교 다니는 그야말로 종속된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아빠는 나이가 많았고 세상 밑바닥을 굴러먹을 대로 굴러먹어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나는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아빠의 말이 거짓이라고 잘못된 믿음이라고 말하려면 나부터 내 돈으로 떳떳하게 살아가며 내 방식대로 살면서 잘 사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아직도 그건 이루지 못했고 아마 이번 생은 글렀을 거다. 아빠의 기준은 높고 높아서 돈을 한 달에 500은 넘게 벌어야 하고 집이 한 채는 있어야 하고 노후 준비가 (대체 얼만큼인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준비되어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이런 말을 듣고 자랐으니 어쩌면 염세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떻게 저 상황에서 세상은 아름답고 모험 가득하며 신비롭고 재밌을 수 있을까. 어떠면 당연하겠다. 나는 인생의 출발점이 다른 면에서 아주 억울하게 느껴진다. 다들 나처럼 사는 줄 알았다. 왜냐면 어릴 적 내 주위 친구들도 저마다 무거운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너무 다른 출발지점을 발견했다. 이제야 눈에 보인다. 출발선이 모든 걸 결정하진 않지만.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꿈을 이루고 희망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냥 나락으로 떨어져 아무의 시선에도 닿지 않는 곳에 그림자처럼 있다가 밤이 되면 조용히 일어나 달빛을 구경하러 나오는 게 아닐까.

나는 ... 핑계를 대고 싶다. 내가 이렇게 무너져있는 이유에 대해. 내가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내가 아직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깨어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에 대해. 내 탓을 하고 싶지 않고 자꾸 아빠 탓을 하면서 숨고 싶은 거다. 이 모든 게 내 탓이라면 난 정말 내가 싫어질 것만 같다.



10.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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