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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나 Oct 10. 2020

겨울을 품고


자꾸자꾸 눈물이 난다. 철퍼덕 엎드려서는 그때 엄마가 발은 현관에 몸은 거실에 걸쳐 엎드려 누워서 집을 나가지도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꼼짝 않고 있던 것처럼, 나도 뭔가를 하다가 그렇게 엎드린다.

그렇다고, 이대로 다 멈춰버릴 작정인가? 출발선상이 다르다는 건 어쩌면 가는 길이 다르다는 뜻일 거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가는 거고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는 거다. 상처는 권력이라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아프다. 상처 하나 없이 마알간 눈을 하고 웃는 모습이야말로 권력 아닌가? 나는 벗어나려 발버둥 쳐도 더 깊이 빠져버리는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홀가분하게 세상을 누비는 가벼운 발걸음이야말로 권력 아니냐는 말이다. 생이 다른 것이 슬프다. 그치만, 이 생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안고 길을 떠날 수밖에 없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나니까. 그런 면에서는 공평할 수 있겠다. 모두는 각자의 생을 이고 지고 길을 떠나는 것일 테니. 나는 내 생에 애정을 가지고 싶다.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니 고유하다. 그 아프고 아픈 고유함을 귀히 여기고 살아가야겠다. 그래야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또한 발버둥이겠지만, 여기가 늪이 아니라 바다 한가운데라면, 이 발버둥으로 볕을 쬘 수 있을 거다.

—————-

눈풀꽃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에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다른 꽃들 사이에서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_루이스 글릭(류시화 역)

* 눈풀꽃 : 수선화과의 알뿌리 식물 / 이른 봄에 20-30cm의 흰 꽃이 핀다 / 눈 내리는 땅에서도 꽃을 피우는 특성 때문에 설강화(snowdrop)라고도 한다.

소장님 덧: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글릭의 시예요. 헝가리 출신 유대인인 글릭은 10대 때 거식증을 심하게 앓아 7년 동안 심리치료받으며 정서적 혼란으로 학교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군요. 두 번의 결혼도 얼마 가지 못했대요. 시인에게 시는 '삶을 잃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노력' 중 하나였대요. 그 본능적인 노력의 결과가 이렇듯 단순하고 아름다운 시가 되어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네요.

—————-


분명 며칠 전 읽었던 시인데, 페이스북 글쓰기 그룹에 소장님이 그 시를 올렸다. 첫 문장에 나는 주저앉아 울었다. 겨울을 사랑한 것이 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생을 사랑하려고 겨울을 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요 며칠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이 어디였는지 무엇을 따라가고 있었는지 희미해졌고, 지나온 길을 보니 덧없이 느껴졌다. 울고 울다가 시를 만나 시가 내게 내미는 손을 잡는다. 찬바람이 몰아치고 숨이 턱 막히면 나는 살아있는 거다. 살갗이 에리다면 나는 맞서고 있는 거다. 그걸로 됐다. 나는 삶을 잃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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