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들려주는 아빠의 이야기
사랑은 애매하다.
사전적으로는 사람, 대상을 아끼는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좋아하는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 감정’으로 격하시키고 어떤 것을 ‘사랑’으로 승격시킬지는 너무나 어렵다.
학창 시절의 짧은 기억을 사랑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좋아하는 감정으로 치부하기엔 절절했다. 아직까지도 첫사랑의 기준을 코 흘리게 어린 시절로 잡아야 하는지 정의 내리기 어렵다.
다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일방향이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누군가 좋아하는 감정 또는 마음을 나누는 과정에서도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지질함이 극에 달한 그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앞 매점에 쪼그리고 앉아 100원짜리 초콜릿을 즐기는 것이 하루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
A는 그렇게 무미건조한 일상에 불쑥 들어왔다. 얼굴은 알고 있었으나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 본 적 없는 A는 나에게 초콜릿이 맛있느냐 물었고, 다른 손에 쥐어진 내 손의 초콜릿을 달라했다. 호감이라기보다는 이상함에 가까워 자연스럽게 초콜릿을 건넸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적당한 키에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A는 교복보다는 사복이 잘 어울리는 그런 친구였다. 웃어 보일 때면 수줍은 덧니가 드러났다. 사람과의 관계를 어려워하지 않았고, 감정표현엔 솔직했다. 그래서인지 항상 주변엔 많은 남자, 여자 친구들이 함께했다. 물론 적도 많았다.
이튼 날부터 A는 쉬는 시간마다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나의 교실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늦은 밤까지 문자를 했고, 통화를 했다. 등교 후 쉬는 시간엔 언제나처럼 교실로 찾아왔다. 가까워 지려했고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A가 다가올수록 의심했다. 뭔가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A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많은 친구가 있었지만 시기와 질투가 따라다녔다. A라는 친구를 믿기보다 소문을 믿었다. A가 교실로 찾아오는 것을 피해고, 연락을 끊었다.
서로의 감정은 있었지만 서로를 이해할 절대적 시간은 부족했다. 그렇게 멀어졌다.
당시는 나의 그런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들고서야 얼마나 무례한 행동이었을지, 얼마나 감정에 서툴고 이성을 대하는 것이 바보 같았는지 깨달았다. 어떤 인연을 놓쳐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감정, 사랑하는 감정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임지지 못할 호감에 대응했고, 감정에 반응했다. 초콜릿을 주지 않았다거나, 다음날 교실로 찾아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으면 됐다. 문자에 답하지 않거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되는 것을...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과 책임감을 배웠고, 감정이 이성으로 항상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