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들려주는 아빠의 이야기
‘우산’
비가 오는 날이면 손바닥엔 어김없이 ‘우산’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잃어버리지 말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의지가 담긴 바람이었다. 성인이 된 뒤 수많은 만취를 겪었지만 단 한 번도 ‘핸드폰’을 잃어버린 적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은 그 반대였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은 덜렁대는 나의 모습 그 자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이제 막 어린아이 티를 벗어날 무렵이었고 고학년이 되기엔 철부지 없는 아이였다. 장마철 친구와 함께 읍내를 나가 재미 게 논 뒤 우산 고리를 손에 쥐고 버스를 탔다.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버스는 고불고불 산악 도로를 약 30여분 지나 집에 다다랐다.
시골 버스는 자기가 내릴 곳에 자신이 벨을 누르지 않으면 서지 않는다. 인구밀도가 낮아 타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초등학생에게 벨을 누르는 타이밍을 잡는 것 초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너무 일찍도, 너무 늦게도 누르지 않아야 내가 내릴 곳에 정확하게 정착하기 때문이다.
앉은키보다 높이 있던 버스 벨을 누르기 위해 완전히 엉덩이를 잠시 떼야했고, 온전히 일어나게 되면 버스기사의 호통이 따랐다. 적당한 타이밍을 찾기 위한 ‘버스 하차’ 행위는 초등학교 4학년이 감당하기에는 꽤나 난도가 높은 멀티태스킹을 요했다.
목적지에 150M쯤 다다랐을 때 타이밍 맞게 벨을 눌렀고, ‘삐-’ 소리와 함께 기사님은 내 쪽으로 힐끗 눈빛을 보낸 뒤 뒷문을 열어 주었다.
완벽하게 버스 하차를 마쳤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손바닥에 적인 ‘우산’이라는 단어는 비에 얼룩져 반쯤 지워져 있었고 물론 우산도 내 손에서 떠나, 버스와 함께 멀어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와 엄마에게 한 소리를 듣고 울먹거리고 나서야 현실을 깨달았다. 돌아내려 오는 버스를 기다려 우산을 찾았지만 이미 누군가 집어간 뒤였다.
주인 없는 자전거만큼이나 우산에게 관대한 사람은 없었다.
이때부터였는지 모른다. 무언가 집중할 때, 뭔가 뿌듯하게 해냈을 때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을 때 항상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았고, 지갑을 수소문했다. 만취한 몸을 이끌고 택시를 탈 때에도 언제나 내리기 전 지갑, 핸드폰, 가방 확인은 나의 루틴이 됐다.
두 번 다시 우산을 두고 눈물 흘리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