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에 가장 특화된 강재
요즘은 가정에서 스테이크를 무쇠팬에 구워 먹는 것의 대중화로 인하여 그나마 유명해졌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유학한 직원을 제외하고는 무쇠팬(cast iron pan) 대해서 설명하기가 힘이 들었다. 우선 무쇠팬 자체를 구경도 못해본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아니라 요리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무쇠는 한국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친숙한 강재이다. 대표적으로 솥뚜껑과 가마솥 제조에 이용된다. 솥뚜껑 삼겹살을 먹어본 사람들이면 이 강재가 고기를 구우면 어떤 맛이 나는지, 또 얼마나 좋은지 이해될 것이다.
무쇠팬의 특징은 극단적으로 높은 열보존율과 극단적으로 낮은 열전달율이다. 예열이 쉽지는 않지만 한번 예열이 되면 여간해서는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패밀리 레스토랑 등에서 스테이크가 무쇠 철판 위에 올려져 나오는데 자신의 눈앞에서도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하였을 것이다. 불이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던 열이 강하게 남아있었다는 소리이다.
무쇠팬은 모형틀에 쇳물을 부어 한 번에 찍어낸 제품 특성으로 일반적으로 손잡이까지 일체형으로 나온다. 무쇠는 매우 튼튼하며 (베그에서는 총알도 막는다!) 손잡이까지 일체형이라 접합 부위가 부러지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적어도 본인 이후 자식들 세대까지도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가격도 상당히 저렴하다.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인 롯지사의 무쇠팬은 사실상 코팅팬과 가격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일반 코팅팬과 다른 점은 코팅(seasoning)을 사용자 본인이 직접 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시즈닝이란 기름을 태워 중합 반응을 이끌어낸 후에 검은 패티나(petina: 미세 한녹의 일종)를 생성시키는 것이다. 이 패티나는 음식이 달라붙거나 녹이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
시즈닝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1. 아마씨유등의 건성유 오일을 헝겊 등을 이용해서 무쇠팬 전체에 얇게(정말 얇게- 조금이라도 두꺼우면 그 부 분이 기름떡이 진다) 바른다.
2. 260도 정도로 예열된 오븐에 거꾸로 뒤집어서 넣고 1시간 가열한다.
3. 전원 끄고 오븐에 넣은 상태로 식힌다.
단순히 한 번이 아니라 대여섯 번 반복하면 달걀 후라이도 가능할 정도의 강력하고 두꺼운 코팅이 생성된다. 일반 코팅팬과 비슷하게 퐁퐁 묻혀서 수세미로 벅벅 닦아도 쉽사리 벗겨지지 않는 강한 코팅이 말이다. 시즈닝 자체의 난이도가 어렵지는 않고 코팅만 잘해주면 대부분의 요리가 가능한 범용 만능 팬으로 바뀐다.
그럼 무쇠팬의 단점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무게이다. 무쇠는 특성상 두껍게 제작이 되며 그만큼 무게가 증가한다. 한손으로 들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힘이 약한 주부는 실제로 들어보고 고민을 해봐야 한다. 프로레벨에서도 팬돌리기를 하지 않는 유일한 팬이다. 음식물까지 놓인 무게에서 스냅을 줄 자신이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할수 있는 팬 중 에 가장 무겁다.
두 번째는 예열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스테이크라면 모르겠지만 간단한 달걀 요리 하나 하려고 하는데 3-4분이란 시간을 예열을 해야 한다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 번째는 산(acid) 반응하는 성질이다. 무쇠는 산과 반응하여 녹이 스는데 이러한 성질로 인하여 특정 식재료의 사용이 힘들다. 특히 토마토가 들어간 요리가 불가능해진다는 점이 매우 크다. 이탈리안 음식에서의 토마토는 정체성에 가까운 재료이다. 그래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사용 여부에 많은 고민을 주는 강재이다. 대표적으로 토마토 파스타나, 토마토 수프류, 토마토를 넣고 그 수분으로 졸인(braising) 고기류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관리의 어려움이다. 우선 요리 후 기름을 제대로 제거 안 하고 찬장에 넣은 뒤 며칠 뒤에 꺼내면 기름때가 떡이 되어있어서 아예 요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세제로 박박 세척 후 찬장에 넣는다. 하지만 물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어 역으로 녹이 슬어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즈닝의 난이도가 어렵지 않다고 했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루 정도는 한 시간 일찍 일어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매일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거기에다 시즈닝은 오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가끔씩 가스불로 예열한 뒤 시즈닝을 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그냥 기름을 살짝 먹인 것일 뿐 시즈닝을 한 것이 아니다. 기름을 먹인 후 세제로 세척하면 기름은 사라지지만 시즈닝은 수세미질을 해도 잘 안 벗겨지는 코팅과 같은 물질을 팬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완전히 개념이 틀리다.
만일 본인이 이런 녹슬거나 기름때가 낀 무쇠팬을 소생시키고 싶다면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퐁퐁에 쇠수세미질을 미친 듯이 하여 이물질을 완전히 벗긴 다음 다시 시즈닝 작업을 하면 된다. 그럼 완전 새것이 된 무쇠팬을 볼 수 있다.
참고로 내가 일하는 업장에서도 무쇠재질의 기물 관리를 시켜봤는데 노동의 강도가 너무 높은 전투형 업장이라 쉽지 않았었다. 재료 준비 때문에 계속해서 오븐을 사용하여야 하였고, 시즈닝을 위한 오븐 시간 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다.
거기에다가 겨우 시즈닝 한두 번 보여주고 이론을 설명한 걸로는 제대로 따라 할 직원은 없어 결국 녹이 슬고 기름때가 층으로 쌓였다. 솔직히 후배 직원을 닦달하면 관리가 가능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후배 직원이 나같이 기물을 신줏단지 모시듯이 관리하지도 않으며 스테이크가 주력 요리도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다른 팬으로 충분히 고기 요리 퀄리티가 나온다고 판단되는 현실에서 굳이 그럴 이유를 찾지 못하였다. 프로 레벨에서 조차 무쇠팬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소리이다.
무쇠팬의 강력한 열 보존율은 스테이크등의 ‘겉면을 지져서 마이야르 현상을 만들어야 하는 요리’에 최적화되어있다. 차가운 스테이크가 무쇠팬의 바닥에 닿지만 이미 열을 용암같이 흡수한 무쇠팬은 맹렬하게 고기 바닥을 시어링 하여 갈색의 색을 낸다. 양옆을 갈색으로 잘 구운 후에 버터 한 스푼과 허브, 마늘을 넣고 거품이 일어나게 가열한 다음에 스푼을 이용하여 버터를 고기 위에 끼얹는다. 유튜브나 요리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그’ 장면이고 만일 모임 등에서 이걸 보여주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전문 쉐프를 영접했다는 듯이 열광한다. 그리고 그 누가 해도 정말로 기본 이상의 맛난 스테이크가 탄생한다. 비단 소고기뿐만 아니다. 통으로 껍질채 굽는 생선, 껍질째 굽는 닭이나 메추리 등의 요리에도 매우 좋고 위에서 서술한 요리 방법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스테이크나 굽는 용도만 사용하지만 미국에서는 베이킹, 즉 빵 등을 굽는곳에도 자주 이용된다. 예열만 되어있으면 열이 고루 퍼지기 때문에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튀김(가마솥 닭강정을 생각해보자), 식재료 데침이나 볶음 등에도 매우 좋은 결과를 안겨준다. 사실상 미국에서는 코팅만 되어 있고 예열만 제대로 한다면 파스타를 제외하고는 거의 만능에 가까운 능력치를 보여준다고 여겨지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사용된다.
스테이크를 중심으로 판매하는 레스토랑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애지중지 관리해서 맛있는 고기를 구워야 한다. 가정에서는 한 달에 적어도 스테이크 한번 이상 먹을 생각이 있다면 구매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굳이 거창하게 시즈닝을 안 해도 스테이크 정도는 큰 무리 없이 달라붙지 않게 조리가 가능하며 팬에 문제가 생기면 쿨하게 수세미로 밀어버리면 된다. 만일 관리할 의지만 충분하다면 대부분의 서양요리가 가능한 효자팬이 될 것이다.
참고로 미국 사이트에서 이 팬에 대해 검색하면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고 설명을 하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그것은 우선 미국 문화가 오래전부터 무쇠팬에 엄청 익숙하며,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가정에서 시즈닝에 필수적인 오븐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쇠팬이 어울리는 미국 음식 가짓수가 엄청나게 많다.
이 글을 쓰는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 요리에는 굳이 무쇠팬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거기에다 이 글을 쓰는 나 조차도 집에 에어후라이기가 있을지언정 오븐은 없다. 내 입장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팬이 가지는 강력한 매력은 있지만 스테이크를 조리할 생각이 없다면 굳이 구매할 필요가 없는 기물’이다. 적어도 한국의 일반 가정 기준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