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요리 기물의 끝판왕
구리는 서양 요리에서 가장 각광받는 강재이다. 구리가 이렇게 각광받는 이유는 엄청난 열 전달율 때문이다.
은과 금과 함께 구리는 열전도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다. 문제는 금과 은은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세공품에나 사용되지 주방기물에 사용되기는 힘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구리팬이 사용할 수 있는 강재중 최고의 열전달율을 가지고 있다.
구리팬은 스토브 위에 올리는 순간 바로 열이 느껴진다. 그래서 처음에 사용할 때는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열에 당황하지 말라고 중간 단계만 올리고 사용하는 걸 추천을 한다. 차가운 냉기도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냉기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차갑게 담는 용도의 디저트용 구리볼이 따로 제작되어 나온다.
스테인레스 팬 위에서 남아있는 열기에 베어블랑류의 소스가 분리되어버린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순식간에 열 컨트롤이 가능한 구리팬의 매력에 더욱 열광할 수밖에 없다.
열 보존율이 생각보다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엄청난 열전달율이 이 점을 전부 가려준다. 표현을 극단적으로 하자면 불 위에서 바로 조리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러한 열전달율 덕분에 열이 고루 퍼져 일정 지점만 가열(hot spot)되는 현상이 없어 스테인레스 팬과 비교하면 달라붙는 현상도 확연히 적고 요리도 고르게 조리된다.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열보존율 때문에 스테이크류에는 무쇠팬 등에 밀리는 경향이 있지만 1 인분 정도의 스테이크 조리를 한다면 그 정도로 가열을 안 하고도 충분한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다. 차가운 스테이크를 예열된 구리팬에 올리면 구리팬의 표면은 순간 차가워진다. 열의 보존율이 좋지 못해 순간적으로 바닥에 차가워지려는 순간 불에서 올라오는 열이 다시 바닥을 순식간에 가열하여 마이야르 현상을 만들어 내고 맛난 스테이크가 완성된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세심한 열컨트롤이 가능하여 대부분의 요리에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다. 거기에 무게가 무겁기는 하지만 프로 수준에서는 감내하고 사용할 정도인 기물이다. 적어도 무쇠팬에 비하면 가볍다는 의미이고 팬의 손잡이를 짧게 잡으면 팬 돌리기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거기다 관리만 잘한다면 10년이고 20년이고 견고하게 사용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프로 요리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물이다.
거기에다가 프랑스의 감성을 가장 살릴 수 있는 멋진 팬이기도 하다. 번쩍번쩍 빛나는 구리 위에 스테이크가 올라가 있으면 구리팬이 먼지 모르는 사람조차 ‘우와’하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다. 관리 잘된 빛나는 구리팬이 줄줄이 걸려있는 주방에 대한 로망은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환경 중 하나이다. 만일 본인의 주방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면 구매를 하여도 손해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완벽해 보이는 기물에도 단점이 분명히 있다. 첫 번째로는 가격이다. 기본적으로 구리라는 금속은 가격이 많이 나간다. 높은 열전도 성으로 인하여 전선이나 전기 관련된 제품에 많이 들어가며 그 희소성 때문에 덩달아 팬의 가격까지 올라가 버린다. 24cm 팬 기준 30만 원에 가까운 가격은 사고 싶어도 선뜻 손이 가지 않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두 번째는 관리를 하기 위해 손이 많이 간다는 점이다. 구리란 금속은 쉽게 산화하는 성질이 있어 맺혀있는 물방울 하나만 닦지 않아도 자국이 남는다. 세척 후 한 달 정도만 방치해도 그 특유의 광이 다 사라진다. 세척 방법은 매우 쉽다. 구리 클리너를 이용해서 닦은 뒤 물로 씻은 후 재빨리 물기를 닦으면 된다. 초등학생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난이도이긴 하지만 그 횟수가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겨우 불에 한번 올린 구리팬은 10년은 사용한 듯한 느낌으로 변한다. 조리기구를 사용 시 관리하기 귀찮은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 큰 고민을 하여야 한다. 단지 조리 성능이 좋다고 구리팬을 덥석 구매하여 관리를 안 하는 것은 구리라는 강재가 가진 매력을 죽이는 행위이고 그 비싼 가격에는 럭셔리한 구리만의 매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무게이다. 구리라는 금속은 자체가 무겁게 구성되어 있다. 그 구리로 만든 구리팬은 당연히 스테인레스보다 무거울 수 밖에 없다. 프로레벨에서는 여러가지 테크닉을 사용하거나 팔힘을 길러서 충분히 감내하고 사용하지만 가정에서 일반 주부들이 편하게 들만한 무게는 분명히 아니다.
마지막 단점은 인덕션이 먹히지 않는 재질이라는 점이다. 요즘 들어 주방 및 가정에서도 사용이 급증한 인덕션은 앞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범위가 늘어날 것이다. 순간적으로 치고 나올 수 있는 고열과 중식요리가 집에서 가능함, 가스누출 걱정이 없다는 점등 여러 가지 장점이 많다.
인덕션은 자성에 반응하는 물질이 있어야 작동을 한다. 그래서 심지어 칼등을 올려놓아도 반응을 한다. 그 어떤 물체라도 자성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구리는 기본적으로 자성이 먹히는 강재가 아니며 그 단점을 보완한 제품이 인덕션용 구리팬이 나오긴 하고 있지만 기존의 구리 함량에 비해 많이 낮아진다. 기존 모비엘 헤리티지 구리 라인은 구리 9에 스테인레스 1 비율이지만, 인덕션 라인은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통 겹 방식으로 만들어 중간중간 스테인레스를 껴 놓기 때문에 구리 특유의 열 전도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가격은 기존의 구리제품과 차이가 없다.
구리 바닥에 깔 수 있는 인덕션 전용 발열판이 있긴 하지만 따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불편하며 바닥 쪽에 검은색 자성 처리를 한 제품도 보았지만 구리 자체의 매력을 많이 죽여놓은 느낌이었다. (맙소사. 바닥이 검은색 구리 팬이다. 그럼 구리의 감성은 어디서 느껴야 하는 거지?)
이러한 구리팬에 어울리는 음식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음식과의 궁합이 좋다. Baking, Saute, pan fry, boiling 등 가리지 않는다. 앞서 말했던 스테이크도 무쇠팬등에 비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일 뿐이고 충분한 퀄리티를 보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요리는 열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깨져버리는 홀랜다이즈류나 베어블랑등에 이상적이며 순간적으로 원하는 농도를 맞춰야 하는 리소토 등에도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
이 제품은 정말 요리를 맛나게 하고 싶은 일반인, 그중에서 팔힘이 그 무게를 충분히 견딜 수 있으며 귀찮은 구리팬 관리를 매일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최고의 만족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프로에게는 두말할 필요 없다. 프로 입장에서는 가격을 생각해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강력한 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