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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Sep 20. 2020

바닥을 닦는 일



룸메와 처음 같이 살게 된 집은 5층짜리 낡은 빌라였다. (그 집에 대해서는 이전 글 참고 https://brunch.co.kr/@junga-pic/74 )

그 집에 들어갈 때, 집주인이 도배는 새로 해주었지만 바닥은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바닥에는 평범한 나무무늬 장판이 깔려 있었는데 이전 세입자가 쓰던 흔적과 함께 오래된 바닥이라 여기저기 움푹 파인 곳도 여러 개 있었다. 장판을 까는 가격을 알아보니 70만 원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집이 금방이라도 재건축될 것 같아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바닥 장판을 새로 까는 게 사치로 느껴졌다. 그래서 바닥은 그대로 쓰고 도배만 하고 들어온 것이다. 6년도 넘게 살 줄 알았으면 싸구려 장판이라도 새로 깔았어야 했는데. 


우리가 나눈 가사노동에서 청소는 룸메의 몫이었다. 그런데 바닥의 청소 상태는 늘 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룸메는 청소를 자주 하지도,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아마 가끔은 내가 잔소리도 했을 것이다. 룸메가 억울한 표정으로 "아무리 해도 깨끗해지지 않아!"라고 하기 전까지는.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싸구려에다 오래되기까지 한 장판은 아무리 청소를 해도 깨끗하지 않다는 걸. 가난한 살림이 더러워 보이는 건 꼭 게을러서가 아니라는 걸. 룸메는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열심히 바닥을 닦았지만 여전히 더러워 보였다. 심지어 부엌의 벽과 싱크대 사이에는 청소를 할 수 없는 곳이 있었다. 이전 세입자 혹은 그 이전 세입자부터 차곡차곡 쌓인 먼지와 때가 잔뜩 낀 그곳은 너무 더러워서 쳐다보기도 싫었다. 나는 그리 깔끔 떠는 타입이 아닌데도 집에 그런 구석이 있다는 걸 참기가 힘들었다. '좁고 더러운 집'. 내 마음속에서 우리 집이 그랬다. 그래서인지 쉽게 누굴 부르지도 않았다. 친구들과 오순도순 홈파티를 하기에는 우리 사는 모습이 구차했다. 사실 누가 와도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집이 무너지게 되어(지금 그 빌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30년 된 소형 아파트이지만 깨끗하게 수리된 곳이었다. 바닥은 흰색 톤의 나무 무늬 패널이었다. 흰색은 때가 빨리 낄 것 같아서 처음에는 좀 망설였는데 전체 톤이 밝으니 집이 시원하고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이사 온 후 내가 놀란 것은 룸메의 모습이었다. 그는 바닥에 뭐가 흐르거나 묻으면 재빨리 닦았다. 바닥 좀 깨끗하게 쓰라며 잔소리를 했다. 우리는 예전부터 집에서 슬리퍼를 신어 바닥 청결에 예민하지 않은 편인데도 그랬다. 심지어 어떻게 하면 더 속 시원하게 바닥 청소를 할지 고민하고 스팀 청소기를 샀다. (저렴한 샤오미 스팀 청소기를 샀는데, 좀 힘들어서 그렇지 좋긴 하더라. 바닥이 뽀송하게 닦인다. 맨발로 마구 밟고 싶은 느낌.) 


청소를 해서 깨끗해질 수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애초에 싸구려 장판은 청소도 잘 되지를 않는 거구나. 더러워서 가난한 것도 가난해서 더러운 것도 아니고, 더러워 보일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있다는 걸 알게 된 마흔 언저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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