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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Dec 11. 2017

생크림케이크,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합니다


어릴 때는 어떻게 생일을 축하했더라?


매년 나와 가족, 친구들의 생일을 다이어리에 꼼꼼히 옮겨 적고 그 날이 되면 선물을 고르거나 축하 잔치를 열거나 참석하거나, 생일 카드 등을 써서 준비했다. 시간이 흘러 다이어리는 스마트폰이 대체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꼬박꼬박 알려주던 친구들의 생일을 이제는 알려주는 곳이 거의 없다. 페이스북과 전국민이 가입된 듯한 카카오톡과 연결된 무슨 앱에서 알려주는 것도 같은데 그마저도 자주 들어가야 효용이 있다. 모든 친구들이 다 똑같은 sns를 하는 게 아니다보니, 모르고 지나치는 생일들이 많다. 그렇다고 그게 안타까워 친구들의 생일을 스케줄러에 일일이 입력해 두는 일은 없다. 매체가 변한 이유도 있지만, 예전보다 생일이 중요하지 않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매년 먹는 나이, 매년 돌아오는 생일. 누군가는 '이번이 마지막 생일일지도 모르잖아.'라며 의미 부여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매번 거창하게 신경써서 생일을 챙기기에는 더 신경쓸 것들이 늘어나 버렸다. 내 생일보다는 룸메의 생일을, 룸메의 생일보다는 우리 부모님이나 시어른의 생신을, 또 그보다는 명절을, 그보다는 진행 중인 외주 작업의 마감을 먼저 챙겨야 하는 삶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생일이 유일한 개인적 잔칫날이었던 어렸을 때와는 달리, 중요한 날이 너무너무 많아졌다. 내 세계가 확장되어서라고, 소중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책임질 일들이 있다는 뜻이라며 기분이 좋아야 할까?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최근 몇 년의 나는 누군가 갑자기 나이를 물어오면 '가만, 내가 몇 살이더라?' 하고 몇 초 동안 생각하게 되었다는 걸 말해둔다. 내 나이가 궁금하지도 별로 달갑지도 않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네 ...? 
내가 몇 살이더라...? 




아침에 룸메가 이미지 하나를 보냈다. 모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기프티콘이다. 생크림케이크 하나를 받을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친구가, 자기는 생크림케이크를 아주 싫어한다며 몇 달 전에 룸메에게 주었다고 했다. 그 기프티콘의 기한이 바로 오늘까지다. 햐, 그리고 내일은 내 생일이다. 와, 이걸로 생일 케이크를 마련하면 되겠군! 우리 둘의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하루 일찍 사서 묵히면 맛이 떨어지거나 기분이 떨어지거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생일에 맞추어 공짜 케이크가 생겼으니 그저 감사하고 누리면 된다. 그리고 어차피,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매일 교체하지도 않는다. 케이크는 당일 한정 판매 상품이 아니다. 


동네의 해당 제과점에 가서 기프티콘을 보여주니, 해당 제품이 지금 없으니 가격에 상응하는 다른 상품을 고르라고 한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작은 레드벨벳 케이크와 토스트용 식빵 한 봉지를 골랐다. 기프티콘 금액보다 500원이 넘어서 그것만 결제했다. 달콤한 케이크를 샀으니 다른 빵을 사면 별로 기쁘게 먹지 않을 것 같았고, 식빵이야 냉동실에 두었다가 토스트를 하든 피자빵을 만들어 먹든 이리저리 활용할 수 있다. 빵집을 나오며, 이 쿠폰을 준 친구도 생크림케이크가 아닌 다른 빵을 고를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이걸 우리에게 주었을까? 생각을 잠깐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 우유와 라면을 샀다. 계산대로 가려는데 반값 세일하는 두루마리 휴지가 보여서 집어들었다. 마침 집에 휴지가 딱 한 롤밖에 안 남아서 사려던 참이다. 어깨에는 장바구니를, 왼손에는 케이크, 오른손엔 두루마리 휴지 30롤 팩을 들고 돌아왔다. 케이크 상자는 아무리 작아도 들기에 번거롭다. 최대한 균형을 맞추어 들려고 노력했다. 



케이크 상자는 아무리 작아도 번거롭다.




십 년도 더 전이었을 거다. 동네 제과점에서 엄마, 언니와 커다란 생크림케이크를 샀다. 그런데 들고 돌아가는 길에 수평을 못 맞추어 케이크가 상자 안에서 기울어졌고, 마침 크고 무거운 케이크여서 약한 종이 상자의 손잡이가 부러졌고, 케이크 상자는 거의 땅에 처박히다시피 했다. 케이크 상자를 슬쩍 열어보니, 이미 찌그러져서 우리는 모두 울상이 되었다. 그 일이 제과점에서 몇 미터 못 가 벌어졌기 때문에 되돌아가 빵집 주인에게 케이크를 보여주었다. 당연히 바꿔 달라는 뜻은 아니었지만 그냥 돌아가기에는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손잡이가 떨어져서 더 들고가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엉망인 빵덩어리로 무슨 축하를 한단 말인가!) 사장 겸 제빵사는 우리를 안타깝게 쳐다보더니, 최선을 다해 모양을 가다듬어 주었다. 그는 상자가 부실했던 탓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돌아갈 때 "이번엔 좀더 단단히 고정했어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 정도의 조치만으로도 감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고이고이 상자를 가슴에 안아들고. 물론 가족들의 잔치 기분은 진작에 날아가 버렸지만. 그때 엉망으로 찌부러진 생크림 빵덩어리가 시각적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나는 케이크를 사서 들고 갈 때면 늘 케이크의 수평과 위치, 손잡이의 견고함을 확인한다. 


그 커다란 케이크는 무슨 일로 샀던 걸까?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웬만해서 그렇게 큰 케이크를 사지는 않는데, 왜 그렇게 큰 걸 골랐을까? 엄마랑 내 생일이 겹쳤던 해였을까? 아니면 초대된 손님이 여럿 있었을까? 손이 시렸던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 겨울인데. 혹시 크리스마스 케이크였을까? 이번 내 생일은 엄마 생신과 3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번 주말에 가족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그때 물어봐야겠다. 언니나 엄마는 그게 무슨 축하 케이크였는지 기억할까? 혹시 그 일 자체를 다 잊었을까? 내가 어렸을 때 기억을 들추어 말하면 언니나 엄마는 보통 기억을 못 한다. 엄마는 내가 너무 섬세하고 예민하다고 하신다. 

아니, 그렇게 커다랗고 달콤하고 뭉개진 빵덩어리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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