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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Apr 06. 2017

취향, 뭘까?

나는 취향을 갖고 있을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면, 책도 영화도 물건도 어쩌면 많이 팔리는 것들을 조금은 싫어했다. 

서점의 베스트셀러들은 빌려 읽거나 대충 훑어보고, sns에서 생각이 통한다고 여기는 누군가가 추천하는 책은 열심히 사서 쟁여놨다(아직도 다 못 본 책이 많다). 영화도 제일 큰 관에서 상영하는 것보다 제일 작은 관에서 혹은 소규모 극장에서 드물게 상영하는 것들 위주로 봤다. 홍대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주말마다 여기저기서 열리는 플리마켓이 많았는데 그런 곳에서 파는, 출처는 잘 모르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발견'하면 기뻤다. 


내 취향이 비주류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많이 팔리는' 것들을 싫어했을 뿐인지도 몰랐다.(그래서 아직도 돈을 잘 못 버는 것 같다) 그냥 남들과 똑같은 게 싫어서 다른 걸 선택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어쩌면 이런 꼬인 심사는 '진짜 취향'이 없는 데서 오는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자기만의 취향과 안목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확립할 수 있는 것이다. 일정 수준을 갖춘 물건들을 많이 가져보고 사용해봐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이건 왜 좋고, 저건 왜 싫은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경험은 어렸을 때부터 해봐야 성인이 되어서 확립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 '선택'을 못하는 삶을 살다 보면 이렇게 몰취향의 인간이 되는 건지도. 



취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집 전체가 쪼들려서 늘 용돈이 부족했다. 부모님은 할머니를 모시며 삼촌, 고모 들이 어려울 때마다 도와줘야 했고, 운영하던 가게도 결국엔 망했으며, 우리가 크면서 점점 더 돈 들어갈 일이 많이 생겼다. 초등학교 때 친구네 집에 가면 비디오를 빌려서 재밌게 보곤 했는데 우리 집엔 비디오가 없었다. 삐삐도 사용해보지 못했다. 친구들이 전부 삐삐를 갖고 다닐 때에도 나는 갖지 못했다. 대학에 가서 처음 산 은색의 작은 폴더폰이 내가 가진 최초의 휴대통신기기였다. 옷은 대부분 언니의 것을 물려 입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내가 '골라서' 산 옷은 지금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다만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바로 책에 관한 것이었다. 학교 도서관이나 지역 도서관은 얼마든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고 실컷 틀어박혀 있어도 괜찮았다. 그 안에서 나는 뭘 읽을지 '선택'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고모네 아이들을 봐주러 다니셨기 때문에 나도 학교가 끝나면 그 집에 자주 갔다. 중학교 국어 교사인 고모네 집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보기 힘든 책들이 많았다. 특히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소설 / 산문> 시리즈(푸른나무)는 좌파 사상을 처음으로 내게 가르쳤다.(장마, 순이삼촌, 오발탄, 난쏘공 등등 수록) 독서평설이나 태백산맥, 무라카미 하루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도 고모네 집에서 처음 읽었다. 조금만 흥미가 당기면 뭐든 닥치는 대로 읽던 시기였다. 


대학 때 과외와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용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그 시기에 약간이나마 취향이라는 것이 싹틀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학자금 대출도 있었고 용돈은 여전히 늘 부족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몇 가지 쇼핑을 시작했다. 마음에 들어 산 옷인데 자주 입지 못한 경우도 많고 처음엔 별로라고 생각했던 디자인을 나중에 달리 보게 된 적도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출판사에 다니던 때는 용돈이 부족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빚을 많이 갚은 뒤 조금씩 여유가 생기셨고, 나는 자유롭게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식사를 하고 가끔 마음에 드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구매했다(그래 봤자 대부분 보세였지만).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 좋은 옷을 사준다고 백화점에 데려갔다. 몇 십만 원짜리 재킷을 입으며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벅차서가 아니다. 내가 이렇게 비싼 옷을 입어도 될까? 아무리 형부가 사준다고 해도 옷에다 이렇게 큰돈을 써도 되는 걸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었다. 


이 마음은 내가 결혼할 때 고스란히 또 느껴야 했다. 우리는 서로 예단과 혼수 등 불필요한 지출을 최대한 줄였지만 서로에게 좋은 옷 하나씩은 사주기로 했다. 여기저기 인사드릴 일도 참여해야 할 모임도 많아질 텐데, 둘 다 번듯하게 차려입을 만한 옷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겨울이어서 서로 질과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겉옷을 하나씩 샀다. 그리고 나는 심플한 검은색 원피스를, 남편은 편한 구두를 장만했다. 예복용이라기보다는 평상시에 '신경 써서 입었다'는 인상을 줄 만한 것으로 골랐다. 지금도 겨울이면 여기저기 행사 때마다 입고 다니며 잘 활용하고 있다. 둘이 다리가 아프도록 백화점을 돌며 신중하게 쇼핑을 하고,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거리로 나왔을 때의 묘한 설렘과 불안을 아직 기억한다. 그날도 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렇게 비싼 옷 입을 그릇이 못 되나 봐. 꼭 죄지은 것 같아." 


결혼을 한 뒤 살림을 꾸려 가면서 내 취향은 조금씩 조금씩 생겨났다. 일단 새로 살림을 차리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것을 새로 사야 하기 때문에 고를 여지가 많았다. 벽지, 믹서, 그릇, 오븐장갑, 냉장고, 식탁, 세탁기, 책장, 액자, 청소도구, 이불 등등. 수많은 물건을 찾고,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고르는 과정을 반복하며 취향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시행착오가 없으면 취향도 없지



아직도 내 취향은 확립되지 않았다. (애초에 취향이란 '확립'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선택을 거의 겪을 수 없었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보다는 취향이 생겼다. 결혼 후 옷 쇼핑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다들 그렇게 된다고 하던데 나도 그렇게 되었다.) 지금 옷을 고르라면 이전보다는 취향을 더 반영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일하게 어려서부터 취향이 생겼던 책에 관해서는,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업무상 필요에 의해 산 책도 많고 근무하던 출판사에서 받은 책도 아직 많이 갖고 있다. 또 무분별하게 내키는 대로 산 책도 많다. 결혼 이사를 하며 우르르, 책장을 정리하며 또 우르르 책들을 정리했다. 지금도 앞으로 안 볼 것 같은 책을 가끔 정리해 나가고 있다. 책장은 나의 관심사가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가는지 보여준다. 또한 내가 과거에 머물지, 미래로 나아갈지도 알려준다. 앞으로의 작업에 필요한 책들은 더 사거나 남겨두고, 이미 과거의 책들은 깊이 두거나 처분한다. 나의 책장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책을 통해 취향을 배운다. 취향이란 '나'였다. 나의 현재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도록 나타내주는 것이었다. 

이 몰취향의 인간이 그래도 한 가지 취향이라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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