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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Mar 12. 2017

가난하며 건강하기

건강은 그냥 지켜지지 않는다


"지금 구멍 난 금니 크라운은 원래 저희 쪽에서 하신 거니까 치아색 물질로 교체하시면 할인해서 20만 원에 해드릴게요. 그리고 오래전에 때우신 어금니의 아말감이 많이 들떠서 재료를 다 레진으로 교체해야 해요. 총 비용 70만 원입니다. 예약 날짜 잡으시겠어요?" 
"당장 하지 않아도 괜찮죠?"
"그럼 명절 지나고 오시겠어요?"
"네, 제가 전화 드릴게요." 



건강보험공단에서 2년에 한 번 제공하는 무료 치아검진을 받았더니 내 치아의 이런저런 문제점을 지적해 줬는데, 그중 가장 문제 된 부분이 바로 몇 년 전 신경치료를 하고 씌웠던 금니에 난 구멍이었다. 이런 경우 신경을 다 죽여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자각 증상이 늦게 오고, 아파서 치과를 찾으면 씌워 놓은 이가 이미 스펀지처럼 썩어버려서 발치, 임플란트를 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크라운 치료는 비싸다. 한 번에 30~35만 원 정도가 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래 시술을 한 치과에 가서 물어보니 본래 35만 원이지만 할인해서 20만 원에 해주겠다고 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구멍을 미리 알아냈으니 이번 검진은 무척 잘 받은 셈이다. 하지만 마음은 내내 무겁다. 크라운 교체 비용 20만 원이 내게는 없다. 그 돈을 지불하면 생활비가 모자란다. 괜히 치과의사가 원망스러워졌다. 애초에 금으로 씌우는 게 제일이라며, 오래가고 인체에 해도 없다며 다른 재료보다 몇 만 원씩 더 받아서 씌우지 않았는가. 시술 후 5년 이상이 흘렀다 해도 어떻게 씌워 놓은 치아에 구멍이 날 수가 있나? 의사는 아직은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 나는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통장 잔고가 넉넉해질 수도 있으니까. 몇 달이 될지, 몇 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건강.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자 행복한 삶을 이루는 요건이다. 건강하지 않을 때 삶은 순식간에 망가진다. 병 중에도 행복을 찾을 수는 있지만 - 당장 감기 몸살이나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오는 등의 가벼운 증상만 있어도 삶의 질은 훅 떨어져 버린다. 가난한 내가 일상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바로 '건강'이다. 아프면 돈이 많이 든다. 그런데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데에도 돈이 든다.  


가장 기본적인 건강법은 영양가 많은 신선한 음식을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 문장 속에 많은 어려움이 들어 있다. 일단 '영양가 많고 신선한 음식'은 손쉽게 사 먹는 저렴한 음식으로는 획득하기가 힘들다. 외식 메뉴는 점점 더 자극적이고 조미료나 양념을 지나치게 쓰기 쉽다. 파는 음식은 맛이 우선이고 재료 신선도에 따라 생기는 편차를 줄이기 위해 양념을 강하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더욱이 신선하고 깨끗한 재료를 쓴다는 보장도 없다. 좋은 음식을 사 먹으려면 상당히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돈이 없다면, 만들어 먹어야 한다. 


내가 사는 집은 지역의 재래시장과 매우 가깝다. 독립하면서 가장 잘 된 일 중 하나다. 시장이 없었다면 우리 부부는 지금보다 훨씬 덜 건강했을 것이다. 시장이 가까워서 좋은 점은 시장 자체에도 있지만 상권이 발달한다는 점이다. 시장을 둘러싸고 할인마트 2곳, 대형마트의 익스프레스점 1곳, 농협에서 운영하는 로컬푸드 직매장이 1곳 있다. 나는 시장을 포함해 이 모든 곳에 수시로 다닌다. 거의 매일 한 군데 이상 들른다. 그리고 가장 싸고 가장 신선한 재료를 찾는다. 

여기는 공산품이 싸고, 저기는 채소가 싸다. 또 저기는 과자 할인을 자주 한다. 새로 생긴 시장 근처 채소 가게는 무척 저렴하지만 대체로 신선도가 떨어지니까 꼭 사야 할 품목이 다른 곳에서 너무 비쌀 때만 이용한다. 좀 오랫동안 두고 먹는 채소의 경우(무나 당근 등) 직매장에서 산다. 농부들이 바로 진열해 파는 것들이라 오래 두어도 신선도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쉽게 상해서 버리는 것보다는 약간 비싸더라도 신선한 제품을 사는 편이 돈을 아끼는 방법이다. 당연히 몸에도 좋고 맛도 좋다.

육류는 마트의 특별 할인 품목이 아닌 이상 시장 정육점이 제일 낫다. 생선은 시장에서 사되, 매일 가격이 달라지니 지날 때마다 체크한다. 또 시장이나 마트가 가까우면 냉장고에 많은 재료를 쟁여 놓지 않아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무리하지 않게 된다. 없으면 바로 나가서 사면 되니까. 


위에서 시장과 가까운 점이 무척 다행이라고 적었지만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내게는 버겁다. 매일 가장 싸고 좋은 재료를 찾는 일이, 그 모든 가격을 기억해 비교하는 일이, 최대한 적게 사면서 최대한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노력하는 일이. 한 곳에서 고민 없이 신선한 재료를 한꺼번에 구매하면 좋겠다. 더 나아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양질의 음식을 매일 공급받을 수 있다면 몸도 편할 것이다. 내 에너지를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까, 그런 서비스는 아주 비싸니까. 


종일 앉아서 일을 한다. 원고를 보거나 조판을 하거나 수정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여튼 대부분의 사무직들이 그렇듯 모든 일은 대부분 앉아서 처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허리가 아프기 쉽다. 마우스 사용이 많고 집안일을 매일 하게 되니 손목도 자주 아프다. 한번씩 통증이 심해지면 병원이나 한의원을 찾는데, 병원비나 약값도 만만치가 않다. 근육을 단련시켜 쉽게 아프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다행히 나는 시간을 자유롭게 낼 수 있으니까 오래전부터 하고 싶던 수영을 시작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 다니는데 월 6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2년 가까이 수영을 하니 허리 아픈 일이 많이 줄었다. 다른 부분도 조금씩 근력이 생겼다. 그러나 최근 생활비가 많이 모자란 달이 생겨 몇 달 동안 수영을 등록하지 못했다. 마침 겨울이라 추워서 안 가는 날이 생기기도 하고, 돈도 모자라니 겨울 동안은 쉬기로 하였다. 그러니 약속처럼, 다시 허리가 아파온다. 

수영을 쉬는 동안은 집에서 매일 플랭크를 하기로 했다. 다이소에서 5천 원을 주고 요가 매트도 샀다. 그런데 자꾸 잊게 된다. 허리가 아파오면 그제야 서둘러 플랭크 1분씩을 벌벌 떨며 해본다. 


건강하게 살기, 가난해도 건강하게 살기. 쉽지 않다. 덜 가난한 사람보다 더 머리를 쓰고 더 부지런해야 한다. 그렇게 나의 일상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쉽게 망가져 버린다. 

  



*현 시대의 가난을 주제로 글을 이어갑니다. 

다른 작가님들도 매거진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매거진을 열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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