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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Feb 25. 2017

대체로 가난한 거 맞아

내 가난 증명하기




한 출판사의 의뢰로 책 세 권의 편집 작업을 한꺼번에 계약했다. 한 권을 먼저 끝내고, 같은 시리즈인 두 권은 동시에 진행해서 납기일을 맞췄다. 눈이 빠지도록 힘든 작업이었지만 책 만드는 일이 원래 그렇다. 

나는 몸도 정신도 많이 지쳐서, 몇 달 동안 열심히 일해 받은 약간의 여유 자금을 부산행 교통비와 체류 비용으로 썼다. 

부산에서 한 카페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때 말을 섞고 친해지게 된 A가 있었다. 역시 서울에서 여행을 온 사람이었다. 하염없이 바다를 보거나 책을 읽다가 심심해하며 같이 내 sns를 보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깜짝 놀랄 만한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 말을 듣게 된다.  


에이, 가난하다더니
식탁은 가난하지 않네. 


순간 너무 당황해 나는 할 말을 잃고 그저 웃기만 했다. 어이 없는 의미의 웃음이었으나 A가 그 뉘앙스를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본 사진 속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내가 차린 저녁 식탁이 있었다. 소스로 덮인 포크립(돼지 등갈비), 아스파라거스 구이, 와인 두 잔, 밥, 김치, 짭짤한 밑반찬, 분위기를 위해 켜둔 촛불. 그런 것들로 구성된 식탁이었다. A는 뭘 보고 그런 말을 했을까? 등갈비? 아니면 아스파라거스? 와인? 


나는 A에게 즉시 "이 등갈비는 친척분이 먹으라고 주신 홈쇼핑용 냉동 제품이에요.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뒀죠. 렌지에 몇 분만 돌리면 돼요. 아스파라거스는 집 앞 농협에서 직거래 상품으로 파는데 한 묶음에 2000원이었어요. 와인은 크리스마스 세일 상품으로 5000원 정도에 샀답니다. 그리고 며칠에 걸쳐 조금씩 마셨죠. 이만하면 별로 비싼 식탁은 아니지 않아요?"라고 말해야 했을까? 이 모든 설명을 하지 못한 나는 가슴이 꽉 막힌 채 그 상황을 넘어가고 말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끊임없이 자신의 가난을 설명하고 증명해야 할까? 


우리 부부는 모두 프리랜서다. 룸메는 음악 작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나는 편집 외주일과 독립출판, 그림책 창작 작업을 병행한다. 고정 수입은 너무 적어서 둘이 한 달을 살기에는 한참 모자란다. 그나마 편집 외주 일을 하면 제법 쓸 돈이 들어오지만 출판계의 불황과 함께 그 일거리도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돈이 들어오면 일단 다른 달에 못 벌 것을 대비해 매달 조금씩 나눠써야 한다. 의료보험금도 직장가입자보다 많이 책정된다. 결혼하고 나서 생각보다 많이 나오는 의료보험료에 놀라 살고 있는 집의 임대 계약서 사본을 팩스로 보내 소명을 했지만, 줄어든 금액은 겨우 몇 백 원이었다. 


"그래서 얼마나 가난한 건데?"라고 다시 묻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뭘로 증명을 해야 할까? 의료보험료 고지서를 보여주면 되려나? [ 소득 점수 : 0 ] 이렇게 적힌 부분을 보면 납득이 갈까? 아니면 더 어떤 말을 보태야 하나? 이번엔 평소에 어떻게 먹는지 후줄근한 식탁 사진을 보여줘야 하나? 


"난 가난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너 안 가난한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 그 이후의 일은 그야말로 폭력적이다. 가난한 사람은 자신을 '가난해 보이지 않도록 만든' 물건이나 상황의 출처를 밝혀야 한다. 그 밑에 어떤 사정에 깔려 있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그렇게 구구절절 '증명'해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아, 그래. 너 가난한 거 맞구나."라는 인정이다. 그 인정은 가난한 자에게 다시 한 번 비참함을 느끼게 하는 것 말고 다른 용도가 없다.  



 




*현 시대의 가난을 주제로 글을 이어갑니다. 

다른 작가님들도 매거진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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